그런데, 오달수는 만년 조연배우입니다. 그는 모든 배우들이 꿈꾸는 주연배우를 단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산 지가 벌써 27년째입니다. 21살 때 부산의 극단 '연희단 거리패'의 연극 <오구>의 대역으로 나간 것이 시작입니다. 가난한 연극인으로 십여 년을 살다가 2002년 '해적 디스코왕 되다'로 영화 데뷔한 이후 <올드보이>, <마지막 늑대>, <꽃피는 봄이 오면>, <효자동 이발사> 등에 출연했습니다. 특히 올드보이 주인공 오대수(최민식)가 감금되어 있던 사설감옥 사장 '철웅' 역을 맡아 영화판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오달수의 화려한 성공인생을 얘기하려고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그의 화려함 뒤에 감추어진 인생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잘 생긴 얼굴도, 근육질 체격도, 무술배우도 아닌 그가 오직 못난 얼굴을 밑천으로 주연배우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천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실은 추석연휴 어느 날 그를 인터뷰한 모 일간지 기사를 읽었습니다. 읽다가 나도 몰래 그만 눈시울이 붉어지고 콧등이 시큼해져 티슈를 빼들어 눈물을 훔쳤습니다. 대한민국에도 이런 배우가 있구나!
먼저 오달수는 곁눈 한 번 팔지 않고 고지식할 만큼 연극과 영화에만 자신의 전 인생을 걸었더군요.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서라도 다른 직업을 기웃거릴 법 한데도, 그는 오직 연극과 영화에 올인했습니다. 대학을 두 번이나 떨어지고 나서 인쇄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인쇄물을 배달하려 들락거렸던 부산 가마골 소극장 단원들과 친해진 것이 연극인생의 시작이었더군요. 무대 조명기 갈아주고, 편의점 가서 물 사다주고, 포스터 붙이러 다니고, 극장 안에서 굶기도 하고… 어느 날 연극 <오구>의 배역이 펑크 났을 때, 오달수가 대역으로 무대에 섰는데 바로 '문상객 1' 이었습니다. 공연시작 5분 뒤 등장해 끝날 때까지 약 2시간 동안 마당 구석에 앉아 화투만 치는 역할이었습니다.
오달수는 TV오락프로에 나가지 않더군요. 강호동의 '무릎팍도사'가 인기일 때 출연을 고사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자신의 역할이 웃기는 배역인데, TV오락프로에 나가게 되면 웃길 자신도 없고 또 영화에서 연기가 맥이 빠질 것 같아서라고 했습니다. 영화사와의 사전계약서에 '오락프로는 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넣을 정도로, 자기관리와 프로의식이 투철한 배우입니다.
'급격한 우회전은 승객의 머리를 좌경화시킨다는 걸 몰라요?'
그러고 보면 오달수의 인생성공은 그저 운이 좋았던 덕분이 아닙니다. 남들 보기에는 바보 같지만 가난 속에서도 현혹되지 않고 우직하게 걸어간 외길인생이 오늘의 오달수를 만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쟁쟁한 주연배우들 사이에 '오달수'라는 조연배우를 가진 국민들은 행복합니다. 1등만이 존재할 뿐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3, 4등 인생이 1등보다 더 큰 대접을 받고 있으니까요. '오달수!' 그의 얼굴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