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직원이 기자들을 지하벙커 쪽으로 안내했다. 지하벙커 입구는 버스환승센터 2번 승강장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입구가 열린 지하 계단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려다봤다.
여의도 한복판에 비밀 지하벙커라니, 놀랍기도 했지만 수십년 동안 땅밑에 이런 비밀 지하벙커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이 의외이기도 했다. 지하벙커는 여의도에 버스환승센터를 건립하던 지난 2005년 옛 중소기업전시장 앞길 7m 땅밑에서 처음 발견됐다.
지상의 빗소리까지 겹쳐 지하 특유의 축축한 냄새가 나고 공명현상이 일었다. 복도처럼 생긴 중앙공간의 양쪽 끝에는 기계실과 화장실, 철문으로 굳게 닫힌 출입문이 2개 더 있다. 이 문은 지금은 폐쇄돼 외부와 차단돼 있다.
서울시가 지하 비밀벙커의 유래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시가 갖고 있던 항공사진을 일일이 대조해봤다. 그랬더니 76년 11월 항공사진에 지하벙커가 있던 지역에 공사흔적이 없다가 이듬해 11월 항공사진에는 벙커 출입구로 보이는 시설물이 찍혀있었다.
2005년 발견 당시만 해도 지하벙커에 버스 환승객 편의시설을 설치하려 했지만 수익성 문제로 백지화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이후 벙커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특히, 지하벙커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아이디어와 제안을 받을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240여평(793㎡) 크기 지하벙커의 구조나 특징으로 볼 때 전시장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시민들의 의견이 많다고 살짝 귀띔했다.
때마침 오늘은 국군의 날 67주년 기념일이다. 날씨가 나빠 올해 국군의 날 행사는 충남 계룡대에서 실내행사로 치러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여의도 비밀 지하벙커를 3년밖에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군사정권을 이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도 그 시설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 최소한 벙커의 존재 자체는 알고 있을 것이다.
벙커의 존재를 아는 또 한사람이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974년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1979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다. 따라서, 아버지를 수행해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를 찾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면에서, 여의도 지하벙커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아버지의 유물인 셈이다.
만약에 지금 서울시장이 야당이 아닌 여당 출신이었다면 이 지하벙커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를 상상해봤다. 지금처럼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발상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최소한 청와대의 뜻을 물은 뒤에 활용도를 검토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냉전시대의 유물, 여의도 비밀 지하벙커는 숨 가쁜 현대사와 함께 수십년을 돌고 돌아 아버지가 만들고 그 딸이 대통령인 시대에 와서야 공개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