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잘 사니까 행복? 北 사람들에게 안 먹혀"

삐라, 남북한 모두에게 별로 효과적이지 않아

- 삐라 관련 北주민 의견 듣고자 다큐멘터리 제작.
- 관광객으로 위장, 함경북도서 몰래카메라로 촬영.
- 北 주민들, 남한보다 美 정부 강하게 비판해.
- 삐라에 묘사된 김정은의 모습은 좋아하지 않아.
- 남한 부러워 하지만 부에 대한 개념은 달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5년 9월 30일 (수) 오후 7시 0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조현준 감독 (계명대 교수)

◇ 정관용> ‘삼성을 알고 남조선이 잘사는 것도 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가?’ 북한 함경북도에 사는 40대 남성의 말입니다. 최근에 이렇게 생생한 북한 주민의 인터뷰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영화 ‘삐라’인데요. 작품을 직접 만드신 계명대학교 언론영상학과의 조현준 교수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함께 만나보죠. 조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 조현준>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이거 어떻게 찍게 됐어요?

◆ 조현준> 찍게 된 계기는 아시다시피 삐라가 우리 남한 사회에서 엄청나게 큰 논란도 있었고 남남갈등을 초래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언론을 통해서 대북 삐라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의견 그리고 탈북자에 대한 의견을 듣다가 아무래도 북한 주민들의 의견은 어떨지 제가 궁금해서 북한 함경북도에 몰래카메라를 가지고 촬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정관용> 몰래카메라로?

◆ 조현준> 네.

◇ 정관용> 국적이 어떻게 되세요?

◆ 조현준> 저는 국적이 캐나다입니다.

◇ 정관용> 아, 그래서 가능했군요.

◆ 조현준> 그래서 일단 관광으로는 갈 수 있죠. 대신에 영화인이나 언론인 같은 경우는 만약에 촬영을 목적으로 간다면 엄청나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 정관용> 당국의 허가를 받으려면?

◆ 조현준> 그렇죠. 그리고 또 특히나 대북전단 삐라에 대해서 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 정관용> 말이 안 되겠죠.

◆ 조현준> 그렇죠. 그런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서 한다는 건 그만큼 진실된 어떤 답변을 얻기도 어려울 뿐더러 아마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겠죠. 그리고 한국에서 또 살고 있으면 안 돼요. 아무리 외국인이어도 관광 자체를 할 수 없어요, 한국에 살고 있으면.

◇ 정관용> 태어나긴 한국에서 태어나셨어요?

◆ 조현준> 네.

◇ 정관용> 그러면 몇 살 때 캐나다에 가셨나요?

◆ 조현준> 캐나다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캐나다를 갔죠.

◇ 정관용> 이민으로?

◆ 조현준> 네.

◇ 정관용> 이민으로 가서 캐나다 국적을 취득하신 거고?

◆ 조현준>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언제 가셨어요, 북한에?

◆ 조현준> 2013년 10월 말 경에 가서 한 일주일 동안 갔었습니다.

◇ 정관용> 이때는 한국에 살고 계시지 않았군요.

◆ 조현준> 한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한국에 사는 사람은 외국인이라도 안 된다면서요.

◆ 조현준> 제가 비자를 받기 위해서 제 신분을 조금 위장을 해서 캐나다에 있는 대학생으로 서류를 작성을 하고 전화번호 같은 경우는 사촌동생이 캐나다에 있거든요? 그 사촌동생 전화번호를 적어서 경영학과에 다니는 대학생으로 위장을 해서 비자를 받았죠.

◇ 정관용> 그런데 함경북도 지역에는 대북전단이 거기까지 안 가잖아요.

◆ 조현준> 그렇죠. 안 가겠죠, 거기까지는.

◇ 정관용> 그런데 이왕 대북전단 삐라에 대한 내용을 담으려고 했으면 함경북도 지역이 아니라 휴전선 근처라든지 개성이나 이런 쪽으로 오시지 왜 함경북도로 가셨습니까?

◆ 조현준> 일단 함경북도가 평양보다는 어쨌든 좀 더 서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 정관용> 그건 100% 맞는 말이겠고.

◆ 조현준> 일단은 평양보다는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리고 또 함경북도는 중국 국경에 있다 보니까 그 사람들의 마음이 좀 더 열려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 저한테 좀 더 솔직한 답변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죠.

◇ 정관용> 이렇게 관광으로 들르는 외국인들이 많습니까? 1년에 몇 명쯤 된다고 생각하세요?

◆ 조현준> 함경북도 쪽은 많이 없어요.

◇ 정관용> 그렇겠죠.

◆ 조현준> 함경북도는 정말 없는 것 같고 저와 같이 같던 사람 한 5명 정도 되는데 평양 같은 경우는 한 20명 넘게... 한 번에, 한 그룹이 20명 넘을 때도 많죠. 평양으로 거의 다 간다고 보시면 되고 함경북도 쪽은 실은 제가 갔을 때가 거의 처음으로 관광을.

◇ 정관용> 첫 상품으로.

◆ 조현준> 네, 거의 첫 상품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정관용> 한 일주일 정도라고 하셨죠?

◆ 조현준> 네.

◇ 정관용> 안내원이 계속 따라다니나요?

◆ 조현준> 안내원이 계속 따라다니죠.

◇ 정관용> 정해진 코스로만 다니게 됩니까?

◆ 조현준> 정해진 코스로 가긴 하죠. 그런데 도시에서 도시로 갈 때는 버스를 타고 또 이동을 하기 때문에 이동을 할 때는 농촌마을이라든지 조금 발전되지 않은 곳도 다 거치거든요. 그리고 그 도로들이 다 비포장도로이기 때문에 북한의 어떤 가난한 모습도 보게 되죠.

◇ 정관용> 비포장도로의 농촌마을을 보기도 합니다라고 하셨는데. 사람을 마음대로 만날 수 있어요?

◆ 조현준> 마음대로 대화를 나누기는 쉽지 않은데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노래방 비슷한 곳도 가긴 했거든요. 노래방도 아니고 나이트도 아니면서 노래방인데 좀 큰 그리고 조명은 나이트 조명을 틀고 거기 북한 여성분들이랑 같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처음에는 김정은 노래만 계속 부르더라고요. 듣기 싫어서 혹시 다른 노래 없냐 했더니 미국 노래를 틀고 우리가 소위 클럽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들도 틀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그거에 깜짝 놀랐고. 길거리에서 말 시키고 하는 건 좀 쉽지는 않죠. 안내원이 없을 때 저는 했죠. 안내원이 없는 틈을 타서 주위에 있는 사람, 쭈그리고 앉아 있거나 했을 경우에 슥 가서 얘기를 하고 그랬습니다.

◇ 정관용> 그걸 몰래카메라에 담으신 거예요?

◆ 조현준> 네.

◇ 정관용> 카메라는 어떻게 생긴 걸 갖고 가셨습니까?

◆ 조현준> 카메라는 시계인데요. 시계에 조그만 렌즈가 있습니다.

◇ 정관용> 진짜 몰래카메라군요?

◆ 조현준> 그렇죠.

◇ 정관용> 몇 사람 정도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합니까?

◆ 조현준> 인원수로 보면 한 7명 정도?

◇ 정관용> 7명.

◆ 조현준> 아주 짧게 한마디씩만 해 준 분도 있지만 다 합쳤을 때 7명 정도 됩니다.

◇ 정관용> 그 7명의 직업분포 같은 걸 간략히 소개할 수 있을까요?

◆ 조현준> 일단 제일 메인으로 제가 인터뷰를 했던 분이 전직교사 하시던 분이고.

◇ 정관용> 전직교사.

◆ 조현준> 네.

◇ 정관용> 지금은 은퇴하신?

◆ 조현준> 지금은 은퇴를 했죠. 그리고 또 한 분은 바닷가에서 생선을 파시는, 생선을 만지고 계시던 여성분이 한 분 계셨고 그리고 시장의 한 아주머니가 또 계셨고. 또 호텔종업원 두 분. 제가 잠을 자러 가잖아요. 그러면 가이드도 잘 것 아닙니까? 저는 그때 슥 나왔죠. 나와서 호텔 로비에서 앉아서 북한 여성분, 일하시는 분 2명이 있길래 그분들이랑 얘기를 한 거죠.

◇ 정관용> 호텔 바깥에는 못 나갑니까?

◆ 조현준> 호텔 바깥에는 못 나가죠. 저는 그거는 시도는 안 했습니다.

◇ 정관용> 그리 많은 분을 만난 건 아닙니다마는 그분들의 말 속에 들어있는 몇 가지 공통점 이런 걸 질문 드리고 싶은데 우선 남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가요?

◆ 조현준> 남한에 대해서 우리 정부를 비판을 하죠. 너무 강경하게 나오는 것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대신에 북한에서는 남한을 비판하지만 남한보다는 미국 정부를 훨씬 더 비판을 하고요. 자기네들이 이렇게 좋지 않은 상황에 고립돼 있는 그런 상황이 미국 때문이다. 다 미국 탓을 하고요. 그리고 남한 정부도 좋지 않게 보고 있죠. 지금 현 정부를. 그 대신에 제가 들었던 얘기는 또 모든 남한에 있는 국민들이 우리를 다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지 않느냐, 이런 어떤...

◇ 정관용> 동포애 같은 걸 많이 갖고 있나보죠?

◆ 조현준> 동포애는 많이 갖고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 정관용> 남한이 훨씬 더 잘 산다는 것을 대부분 다 알던가요?

◆ 조현준> 대부분 다 알고 있더라고요. 삼성도 얘기를 했고 또 자동차 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이분은 남자 분이었으니까 자동차 현대라든지 기아라든지 이런 부분들도 다 알고 계시더라고요.

◇ 정관용> 김정은 체제에 대해서는 어떤 인식을 갖고 있던가요? 혹시 그런 것도 질문이 가능했나요?

◆ 조현준> 공통적으로는 김정은을 자기들의 아버지로 생각을 하죠. 아버지로 생각을 하는데 대북전단 삐라를 보면 김정은을 돼지로 그린다든지 아주 이상한 괴물로 그려서 날리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보면 상당히 기분이 나쁜 거죠. 자기 아버지와 같은 존재, 종교 아닙니까? 김정은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북한에서는 신처럼 모시고 아버지처럼 모시는 것인데 그런 식의 삐라에 그려진 김정은의 괴물 같은 모습 이런 걸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 정관용> 대북전단을 직접 봤대요, 그 사람들이?

◆ 조현준> 그 사람들이 직접 봤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고요. 그런데 삐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더라고요.

◇ 정관용> 어떻게 알았죠? 함경북도까지 안 날아가는데.

◆ 조현준> 북한 방송에서 계속 나가나 봐요. 그래서 그것도 다 알고 있더라고요. 뉴스를 통해서 봤나 봐요.

◇ 정관용> 그런 삐라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더라.

◆ 조현준> 맞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대북전단과 함께 1달러짜리 현금을 살포하기도 하고 의약품 같은 게 들어 있기도 하고 그러지 않아요?

◆ 조현준> 네.

◇ 정관용> 그런 거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 조현준> 그거에 대해서는 적십자를 통해서 보내면 되지. 공식적인 성격을 띠면 되지, 그걸 왜 비겁하게 풍선에 넣어서 그렇게 뿌려야 되느냐? 그런 말을 했습니다.

◇ 정관용> 보낼 거면 적십자를 통해서 정상적인 루트로 보내지. 그런 표현이었다.

◆ 조현준> 네.

◇ 정관용> 직접 대화를 나누면서 깜짝 놀란 인터뷰 이런 것도 혹시 있었습니까?

◆ 조현준> 하나는 핵무기에 대한 게 있었죠.

◇ 정관용> 아, 핵무기. 뭐라던가요?

◆ 조현준> 자기네들은 방어의 목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지 이걸 공격을, 어느 나라를 특정 나라를 공격하려고 핵무기를 만드는 건 아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핵무기가 제일 많은데 우리가 왜 미쳤다고 미국을 공격하겠느냐,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 정관용> 그래도 핵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는 거다.

◆ 조현준> 맞습니다. 그런 말도 정확하게, 딱 그 말을 했었습니다. 또 핵무기에 관련된 것은 제가 그런 얘기를 했었거든요. 우리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정권 때 지원을 많이 해 줬잖아요, 북한한테. 햇볕정책이라고 해서. 그때 그런 지원을 좀 잘못된 것으로 보는 측면도 있다.

◇ 정관용> 그런 지원 받아서 핵 개발했다?

◆ 조현준> 네. 그렇죠. 그렇게 생각하는 한국 국민들이 더러 있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했더니, 자기네들은 그 지원이 꼭 있었다고 해서 핵무기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지금도 이명박 대통령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정권이 들어오면서 또 국제사회에서 이런 압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멀쩡하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다. 그렇게 얘기를 하고요. 그리고 또 쌀이나 비료 같은 것을 예전에 주고 했을 때 그런 것들이 다 군인들한테 가고 일반 서민들한테는 가지 않는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건 어떻게 된 것이냐 했더니 그건 자기 자신, 본인들도 잘 모른다. 그게 정말로 군대한테 다 갔을 수도 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자기 자식들이 다 군대에 가 있대요. 그러니까 북한이라는 나라는 다 자식들한테 그런 것이 먹을 게 가고 하면 부모는 부모 입장에서는 그래도 괜찮다는 거죠. 자식이 배부르면 우리도 배부르다. 그런 말도 했고요.

◇ 정관용> 이 영화 삐라, 전체를 통해서 우리 조현준 교수께서는 뭘 말하고 싶었습니까?

◆ 조현준>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 대북전단 삐라가 남한 그리고 북한한테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걸 전하고 싶었죠.

◇ 정관용> 북한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 삐라를 통해서 뭔가 새로운 정보를 얻고 문제의식을 갖고 이런 게 전혀 아니더라.


◆ 조현준> 아니더라.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미 한국에 대해서 다 알고 있고요. 그리고 대북전단 삐라에 들어가 있는 내용을 또 보면 우리 남한의 발전사, 북한과 경제적으로 엄청난 차이, 이런 걸 보여주고 있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 조현준> 그런데 그분들한테는 남한이 잘 사는 것에 대해서 조금 부러워하는 건 있어요. 딱 보면 있는데 그런데 그 사람들은 바깥세상을 자유롭게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잘 산다는 게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잘 산다는 걸 느껴보지도 못한 사람들한테 물질적으로 우리가 잘 사니까 우리는 행복한데 너희들은 가난하니까 불행한 거다. 이런 기준이 그쪽 사람들한테는 딱히 먹히지 않는 것 같거든요. 기준이 다르다는 거죠. 행복의 기준도 삐라에 담긴 내용은 물질적인 부를 우리는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 정관용> 그렇죠.

◆ 조현준> 그런데 북한에서는 그런 물질적인 부를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느껴보지도 못한 사람들이고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이게 지금 소통이 안 되는 거죠, 그런 식으로 하면.

◇ 정관용> 남한에서도 논란만 일으키고 그걸 받아들이게 되는 북한 주민들한테는 아무런 효과가 없더라.

◆ 조현준> 그렇습니다. 이게 또 대북전단을 북한에 계속 날리면 북한은 또...

◇ 정관용> 공격한다고 그러고.

◆ 조현준> 공격을 한다고 하고 그렇게 되면 또 개성공단 같은 경우도 남한 쪽에서 문을 닫아버린다든지 또 외국인 관광객도 그렇게 되면 줄 수밖에 없고 그리고 북한에서 또 외국인 관광객을 안 받을 수도 있거든요.

◇ 정관용> 역효과만 나더라.

◆ 조현준> 네, 맞습니다.

◇ 정관용> 그나저나 시계에 숨어 있는 몰래카메라로 찍으신 그 파일을 어떻게 용케 잘 안 들키고 갖고 나오셨네요?

◆ 조현준> 네. 제가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비밀폴더를 만들 수 있더라고요, 컴퓨터에. 그 비밀폴더에다가 몰래카메라로 찍은 장면은 거기에 다 넣었죠. 몰래카메라뿐 아니라 제가 다른 DSLR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카메라도 찍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래도 또 좀 문제가 될 만 한 건 어쨌든 다 비밀폴더에 넣어서. 비밀폴더라고 하면 모르는 거죠. 암호를 쳐야 아는데. 그런데 제가 또 두렵기는 했죠. 혹시 IT전문가가 또 있어서 그걸 발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죠. 그 컴퓨터로 파일을 좀 옮겨놔야 또 다시 촬영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말 가슴이 조마조마했죠. 컴퓨터 검사를 하러 들어가서 제 것만 안 나오는 거예요. 일단 저를 불러서 비밀번호를 제가 잠가놨거든요. 처음에 부팅할 때. 이 비밀번호를 풀라고 하고 나가 있어라 하고 계속 안 나오는 거예요. 한 30분 정도는 기다렸던 것 같아요. 비밀번호를 풀어주고 다시 나가고 다른 제 주위에 외국인 관광객들은 컴퓨터 다 받았어요. 저만 안 받았거든요. 누구한테 말을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예요. 정말 그때는 머리가 하얘지더라고요.

◇ 정관용> 그거 비밀폴더를 열어서 인터뷰한 내용까지 확인한 다음에 간첩죄로 잡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 조현준> 그러니까요. 제가 일단은 거기까지는, 오히려 너무 극한 상황은 최대한 제가 생각을 안 하려고 했어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런 위험부담이 있는 일이었는데 다행히 영화로까지 됐네요.

◆ 조현준> 네.

◇ 정관용> 북한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는 영화 '삐라' 만드신 계명대학교 언론영상학과의 조현준 교수 오늘 함께 만나봤습니다. 오늘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 조현준>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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