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여학생들을 설레게 했던 반항아 권상우는, 이제 어엿한 남편이자 아버지가 됐다.
권상우의 초기 필모그래피 대표작은 주로 학원물 영화가 차지하고 있다. 데뷔작인 영화 '화산고', 눈매가 매서웠던 '말죽거리 잔혹사'는 그를 반항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누군가는 청춘스타인 그의 연기나 발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절 권상우에게는 쾌활하면서도 뜨거운 에너지가 넘쳐났다.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히트한 그 해, 권상우는 인생을 바꿀 드라마를 만난다. 배우 최지우와 함께 한 '천국의 계단'으로 그는 한류를 이끄는 톱스타로 거듭났다.
권상우는 이제 명백히 스타였지만 스크린과 브라운관 어느 한 곳에 안착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했다. '천국의 계단',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뛰어넘을 정도의 큰 성공은 없었다. 그 사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렸다.
그는 끈기있게 자신의 때를 기다려왔고, 영화 '탐정'으로 기어코 그 때를 만났다. 지금보다 서툴러도 더 뜨거웠던 그 시절,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보았던 에너지가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 상당히 오랜만에 코미디 장르로 복귀했다.
- 나름대로 코미디를 꾸준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이야기는 의외다. (웃음) 제가 아빠로 나오니까 관객들이 좀 더 강하게 느끼는 것 같고, 찍는 동안에도 유쾌한 작업이었다. 사실 제가 아빠 역할을 했을 때, 일반 관객들이 어떻게 볼 지 반응이 궁금했다.
▶ 반응에는 만족하나? '탐정: 더 비기닝'(이하 '탐정')의 권상우를 보고 12년 전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권상우를 떠올리는 관객들도 있다.
-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싶다. 사실 추리력 뛰어난 인물이 범인을 잡는 과정은 어떤 배우가 해도 그 길이 정해져 있다. 아이의 아빠와 남편으로 나오는 대만의 모습이 연기적으로 차별성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매력이 있어서 결국 선택한 거고…. 개봉 전 편집실에 한 번 갔는데 편집본을 본 어떤 분이 "권상우 씨 다시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돌아갔네"라고 그랬다더라. 일반 관객들이 가장 권상우다운 모습으로 기억해주는 교집합이 대만이라는 캐릭터에 있어서 좋았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이후에 이런 열광적인 반응은 처음인 것 같다.
▶ 연상인 배우 성동일과의 호흡은 어땠나?
- 선배님 연기는 항상 유쾌하다. 캐릭터를 잡고, 평소 연기보다 자제하시는 모습들이 있다. 다른 배우가 했다면 그냥 눈에다 힘만 주면서 강인한 모습만 보여줬을텐데 선배님에게는 그 속에서 웃기는 찰나의 호흡법이 있다. 그래서 대만이가 무턱대고 날뛰는 게 그나마 유쾌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생각하고, 정말 감사하다.
- 냉정하게 저희 영화는 기대작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추석에 개봉하게 된 이상, 시리즈 책임져야 된다. (웃음) '탐정 2'에서 똑같은 조합으로 작업하고 싶다. 감독님이나 성동일 선배나 정말 인간적으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다. 저희 셋의 바람은 내후년(2017년) 추석에 극장에서 '탐정 2'가 개봉하는 거다. 그 해 추석에는 빨간 날(공휴일)이 무려 15일이다. 아마 절대 망하지 않을 거다.
▶ 스코어는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나?
- 제가 알기로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520만 관객 정도 기록이다.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지만 이번에 그걸 깨보고 싶은 바람이 있기는 하다. 일단 제가 출연한 영화가 관객들이 극장에 많이 오는 추석 시즌에 개봉하는 게 처음이다. 훌륭한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좋은 영화들도 함께 개봉하니까 긴장이 된다. 그래도 내심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기대하고 있다. 모든 영화가 전부 좋을 수는 없지만 '탐정'은 긍정적인 부분이 많ㄷ하. 주어진 환경에서는 속전속결로 정말 잘 만든 영화다.
▶ 실제 본인은 어떤 성격인지 궁금하다. 대만 같은 스타일인가?
- 눈썰미는 없는데 근성과 배짱은 넘친다. 호기심도 별로 없지만 대신 집요하다. 모든 부부가 마냥 행복할 때는 없는 것 같다. 그래도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런 거지 가족을 깨는 정도까지는 안 간다. 대만이가 아내를 실망시키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하는 사소한 거짓말들에는 공감가는 부분이 있다.
▶ 집에서는 어떤 남편인가?
- 기저귀도 갈고, 우유도 먹이고 했다. 오늘 아침에는 일반 쓰레기를 버리고 나왔다. 집안일을 여자 혼자 전부 하는 건 말도 안되는 거고, 신경을 쓸 때는 신경 쓴다. 당연한 거다, 그냥.
- 아내(배우 손태영)는 제가 발목을 수술한 적이 있어서 축구하러 다니는 걸 걱정한다. 운동이니까 건강 생각해서 보내주기는 하는데, 아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하루종일 집에 있다가 축구하러 나갈 때는 눈치를 보게 된다. 일정이 끝나고 바로 축구하러 갈 때는 차 안에 축구가방을 넣어 놓는다거나 그렇게 한다. (웃음)
▶ 아들 룩희하고는 바빠서 많이 못 놀겠다. 배우인 아빠가 바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룩희는 제 엄마 편이고, 저를 경쟁자로 생각한다. (웃음) 가끔 아내가 둘 다 그만 좀 하라면서 이야기할 때도 있다. 저랑 룩희랑 권투를 하면 아내는 심판을 보고, 룩희는 저를 막 온 힘을 다해 내리치고 그런다. 저는 적당히 때리기도 하고, 맞아주기도 하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놀아주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룩희 자체가 민감한 성격이 아니다. 아빠가 유명한 배우인 건 안다. 그래서 주변에 자랑도 하고, 은근히 뿌듯해 한다. 한 번은 아내랑 공항에서 찍힌 사진이 있는데 그걸 봤나 보다. 저희는 가족끼리 잘 다니니까 그 날도 산책을 나가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아빠, 우리 또 누가 사진 찍는 건 아니겠지?' 그러더라. (웃음)
▶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이후, 연기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겪은 것 같다.
- 예전에는 매니지먼트 시스템 안에서 이쪽 일을 잘 알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일만 했다. 큰 사랑을 받았을 때만 해도 제가 모르는 정치는 뒤에서 이뤄지고, 저는 이용당했던 적도 있다. 현장을 둘러볼 여유가 없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제가 주체가 되어서 움직이고, 가정을 꾸리면서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가짐으로 내려 놓고 시작한 부분이 있다. '탐정'은 영화 현장에 있을 때의 제가 행복하다는 것을 제대로 느낀 작품이다. 물론 양면성도 있다. 결혼하고 나서는 역할 제한이 점점 생기니까. 이제 저도 마흔이 코앞이고, 점점 환경이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멜로만 해야겠다는 고집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제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야에 도전하고 스펙트럼을 넓혀야 된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확실히 제게 전환점인 것 같다.
▶ 4년 만의 복귀다. 좋아하는 영화 현장을 이렇게 오래 떠났던 이유가 있다면?
- 아무래도 드라마로 처음 해외에 알려졌고, 일본이나 중국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전작 이후 4년 만에 돌아오게 됐다. 전작인 영화 '통증'은 제게 애착이 많이 가는 영화다. 물론 흥행적으로는 부족했고, 개봉한 후에 저도 이 영화라는 것에 혼자 삐졌던 것 같다. (웃음) 정말 이 정도 평가를 받을 정도의 캐릭터인가. 어쨌든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기했고, 제 필모그래피에는 중요한 영화다.
▶ 변화를 가져야만 하는 시기를 지나며 고민도 있었을 것 같은데.
-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갈 때 모든 남자 배우들이 과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영화가 무엇일까 고민한다. 그래서 정우성 선배나 이정재 선배, (이)병헌이 형, (송)승헌이, 원빈 등이 어떻게 작품을 선택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지 그걸 보게 된다. 배우는 외로운 직업이라, 작품 고민은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거지, 누구에게 접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탐정'은 또래 배우들이 선택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시나리오였고, 편안하면서도 과감하게 선택했다. 사실 큰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눈 앞에 있는 영화 한 편도 힘든 것 같다. 일단 '탐정'을 성공시키는 것이 큰 바람이고…. 흐르는 강물처럼 장르 가리지 않고 작품을 하고 싶다.
- 흥행이다. 저희도 '베테랑'처럼 회식하고 싶다. (웃음) '베테랑' VIP 시사회 후에 열린 뒤풀이를 갔었다. 어떤 열정이 느껴지면서 저 자신만이 느끼는 소외감 같은 게 있더라. 전작이 잘된 상태에서 가면 좀 뿌듯하고 이럴텐데, 너무 오랜만에 가서 앉아 있으려니 스스로가 좀 씁쓸했다. 영화를 많이 하시니까 황정민 선배가 부럽기도 하고. 확실히 제 영화를 개봉하면 그 희열이 있다. 최대한 열심히 하는 게 제 작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탐정' VIP 뒤풀이 때는 우리가 주인공으로 가는 거니까. (웃음)
▶ 한류 1세대 입장에서, 현재 20대 한류 배우들을 보면 어떤 기분인가?
- 예전에는 그런 것들이 많이 신기하고 그랬다. 지금은 뭘해도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어서 팬들과 스킨십을 많이 하려고 한다. 지금 20대 스타들 같은 시기를 저도 다 겪었었다. 뒤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만들어 나가는게 중요한 거지. 또래나 동경하는 선배들이 이 나이를 어떻게 헤쳐나가는지가 중요하다. 어린 배우들을 보면 '저 친구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경쟁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풋풋한 아이들과 경쟁자가 될 수도 없고. (웃음)
▶ 평소에 즐겨보는 예능프로그램은 있나? 출연 생각도 있는지 궁금하다.
- 아내인 손태영 씨가 가정사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아내가 뿔났다', '동치미' 등을 많이 본다. 얼마 전에 '런닝맨'에 나갔는데 아내가 깜짝 출연한 일이 있었다. 결혼식 이후에 그렇게 실시간 검색어에 제 이름이 오래 있었던 적은 처음이라 깜짝 놀랐다. 찍으면서 재밌게 나갈까 생각했고, 너무 힘들고 걱정되기도 했다. 아직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할 생각은 전혀 없다. 연기에 대한 갈증도 있고, 앞으로 10년 정도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심히 작품을 하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아버지이자 권상우 개인을 위해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싶다. 분량과 상관없이 좋게 자리를 잡는 배우가 되고 싶다. 또 제 안에 있는 재밌는 요소들을 어떤 형태로든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 당분간은 영화 쪽에 치중할 것 같다. '탐정' 이후에 바로 영화 촬영에 들어가는 건 아니다. 솔직히 '탐정'이 시험대에 올라야 된다. 감사하게도 중국에서 많은 작품 제안이 오고 있다. 봄까지는 중국에서 몇 작품을 할 계획이고, 시나리오가 오지 않으면 찾아서라도 내년에 들어가는 영화 중 제게 맞는 영화를 두 편 정도 한국에서 하면 좋겠다.
▶ 본인이 꿈꾸고 있는 배우 권상우의 모습이 있을 것 같다.
- 300만이든 400만이든 꾸준히 갈 수 있는 배우. 물론 스타 감독님과의 인연도 없었고, 그런 분들과 작업하는 것도 꿈꾼다. 그렇지만 제 캐릭터와 맞는 '탐정'이라는 영화를 시작한 느낌처럼, 주목하지 않았지만 능력있는 누군가의 작업에 함께 하는 것도 뿌듯하다. 잘된 영화 중에 좋은 영화들이 많은데 영화가 천만인거지, 배우가 천만은 아니지 않나. 그런 것보다는 권상우라는 배우의 영향력이 발휘돼서 좋은 평가를 받고, 믿을 수 있다는 신뢰, 다양한 소재도 어울린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배우 생활 하면서 느낀 게 뭐냐면 결국에는 오래가는 사람이 이긴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