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에도 직장 당직을 서야하는 남편을 홀로 남겨두고 시댁에 내려갈 수도 없고, 성탄절과 같은 휴일마다 자주 시댁을 찾아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송씨는 "옛날 같으면 며느리 혼자라도 시댁에 가서 전이라도 부치는 게 며느리의 도리였을 것"이라면서도 "시댁 식구의 자식은 남편인데, 자식도 가지 못한 시댁을 나 혼자 갈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배진환 씨 부부도 우선 서울에 있는 처가부터 들른 뒤 세종시에 있는 누님 집에서 배씨의 부모님을 잠시 뵙기로 했다.
배씨는 "매형 집안은 명절이 되기 전 미리 모이고, 명절에는 각자 쉬는 가풍이 있어 누님 역시 시댁 걱정이 없다"며 "양가 부모님 모두 굳이 시댁 먼저, 친정 먼저를 따질 것 없이 상황에 맞게 가족이 모이면 된다고 생각하신다"고 말했다.
이처럼 명절 당일 필수 코스이자 고부 갈등의 정점으로 꼽히던 시댁 방문을 미루는 가정이 점차 늘고 있다.
물론 아직 대부분의 며느리들은 시댁에서 추석 당일까지 일하고, 추석 오후쯤부터 친정에 가서 쉬거나 아예 친정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양성평등과 함께 맞벌이 부부 가족 형태가 널리 퍼지면서, 젊은 부부들은 며느리가 시댁에서 일만 하는 '근로 명절'을 과감히 거부하기 시작했다.
특히 주말·연휴 가릴 것 없이 쉴 틈 없이 일하는 현대인들로서는 가뭄에 단비처럼 찾아온 '빨간 날'만큼은 쉴 수 있는 '힐링 명절'로 보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
연휴마다 양가 부모님을 번갈아 모시고 여행을 가는 백기욱 씨 부부도 이번 추석에는 장모님 고향인 전남 목포에서 쉴 계획이다.
백씨 부부도 남들처럼 늘 시댁에서 명절 음식을 만들며 연휴를 보냈지만, 4년 전 아내가 '친정에서는 한 번도 차례를 지낸 적이 없다'며 어렵게 말을 꺼내자 백씨의 마음이 바뀌었다.
백씨는 "차례상을 준비하는 대신 여행 가자고 처음 제안했을 때 부모님들, 특히 내 부모님들께서 무척 당황하셨다"면서도 "형식적으로 차례상 준비하느라 바삐 시간을 보내느니 가족간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이 낫다는 설득에 마음을 열어주셨다"고 말했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가족 단위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휴가 아니면 명절 뿐"이라며 "재충전을 하기 위해 여행을 가거나 아이들과 현장 체험을 가는 등 쉬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다만 "부모님 세대는 부부중심의 시대를 받아들이고, 자녀 세대는 어른들에 대한 예우와 존경을 표현해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