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대국관계' VS '책임있는 부상'…미·중관계 '방향' 입장차
사이버안보 '타협' 가능성…남중국해·인권 '줄다리기' 계속
미·중 양국이 24일(현지시간) 저녁 백악관 영빈관 비공식 만찬을 계기로 정상외교 일정에 돌입했다.
동북아는 물론 21세기 국제질서 전반을 이끄는 데서 '중추'인 양국 정상의 만남은 벌써 다섯 번째이다. 시진핑 주석이 집권 전인 2012년 2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까지 포함하면 여섯 번째 회동이다.
그러나 이번 회동의 '분위기'는 종전과는 사뭇 다르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정상회담다운 정상회담'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까지는 주로 정상 간의 이른바 '래포'(Rapprot.유대)를 키우는 측면에서 서로를 포용하는데 초점을 맞췄지만, 이제부터는 서로 정색을 하고 '할 말을 하고, 따질 건 따지는' 회담 무대가 될 것이라는 뜻에서다.
특히 사이버 안보와 남중국해, 인권문제를 놓고는 양국 사이에 전례 없이 전의가 다져지고 있다.
그렇다고 양국 정상이 '출구없는 대립'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구(舊)질서를 주도해온 미국의 '구심력'이 약화되고 중국의 부상이 가일층 속도를 내면서 자연스럽게 갈등의 면이 커지고 있지만, 그 반대로 협력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협력과 갈등의 이중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북핵 '원칙론' 넘어 공통해법 나올까 =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한 핵문제를 놓고 G2(주요 2개국) 차원의 의미 있는 컨센서스가 형성될지가 최대 관전포인트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우선이라며 압박의 흐름을 주도하는 미국과, 조건 없이 6자회담부터 재개하고 보자는 중국의 입장이 그대로 평행선을 달리느냐, 아니면 새로운 '공통분모'를 만들어내느냐가 한반도 정세의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미·중 양국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공동으로 확인하고 이를 핵심이슈, 특히 협력적 의제의 하나로 다룬다는 것 자체를 의미있게 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마냥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양국 수뇌의 명확한 현실인식을 보여준다.
특히 미국이 북한 문제 전반에 공동대응을 적극 주문하는 점이 주목된다. 이날 저녁 백악관 영빈관에서 열리는 비공식 만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북 단합'을 위한 공동의 협력을 시 주석에게 제안하고 북한 문제를 놓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시 주석이 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을 움직이는 지렛목 역할을 하는 중국이 미국과 협력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의 흐름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양국 정상이 북핵 문제에 대한 새로운 공동인식과 강도 높은 대북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으나, 작년과 같은 수준에서 서로의 '원칙적 입장'을 확인하는데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은 편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전략적 태도를 쉽게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작년 11월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계기에 열린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재확인하면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병진노선은 성공할 수 없다"는 쪽에, 시 주석은 "6자회담을 조기 재개하자"는 쪽에 방점을 찍으면서 분명한 입장차를 드러냈다.
다만, 지금 시기는 북한이 다음 달 10일 노동당 창건기념일을 전후로 장거리 미사일을 이용한 추가 도발을 꾀할 수 있는 국면이라는 점에서 양국이 이에 대응하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신형 대국관계' 대 '책임있는 부상' =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미·중 관계의 방향과 미래상을 둘러싼 두 정상의 입장차가 표면화될 가능성이 있다. 시 주석이 주창하는 '신형 대국관계'와 오바마 대통령이 강조하는 '중국의 책임있는 부상'이라는 키워드가 내용상 서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이번 국빈방미를 중국의 '높아진 격'(格)을 과시하는 무대로 활용할 전망이다. 바꿔 말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놓인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심는 데 방미의 목적이 있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분석이다.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방미가 1979년 덩샤오핑의 방미에 못지않은 의미를 갖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 주석이 '신형대국 관계 구축의 내실화'를 강조하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신형대국관계는 시 주석이 2012년 부주석 당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났을 때 처음 제안한 것이다. 중국과 미국이 서로 충돌하거나 대결하지 말고 상호 존중해 협력과 윈윈의 새로운 관계를 이루자는 것이 핵심 내용이지만, 기저에는 미국을 향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라고 촉구하는 의도가 강하게 담겨 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의 이 같은 행보가 미국 중심의 현 국제질서에 도전하려 한다는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번 정상회담에 앞서 22일 조지워싱턴대 강연에서 "미국은 평화롭고, 안정적이며, 번영된, 그러면서도 국제문제에서 책임 있는 플레이어로서의 중국의 부상을 환영한다"며 "경제발전과 능력에 걸맞은 리더십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 사이버 안보 '타협안' 나올 듯 =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사이에 가장 예민한 현안으로 떠오른 것은 사이버 안보다.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정부와 기업의 자료를 해킹한 주체를 중국 당국으로 지목하면서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며 '분위기'를 잡았고, 이에 중국은 자신들과 무관한 일이라며 반발해왔다. 워싱턴 외교가에서 "사상 최악의 정상회담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달 초 멍젠주 중국 공산당 중앙정법위원회 서기가 시 주석의 특사로 워싱턴을 방문한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중국의 공안총수인 멍 서기는 백악관과 국무부, 국토안보부 핵심인사들과의 막후 조율을 통해 모종의 '타협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양국이 불법해킹 행위를 근절하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국제규범과 질서를 만들어가는 쪽으로 노력한다는 선언과 함께 관련 공통의 기구나 합의를 만드는 쪽으로 타협안이 마련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시 주석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해킹 후원국'이라는 꼬리표를 어떤 식으로든 떼어버리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양국 사이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사이버 군축 협정'이 체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으나 현실화될 공산은 커보이지 않는다.
◇ 남중국해 놓고 '양보없는 줄다리기' = 양국의 외교·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최대 갈등요인은 역시 남중국해 문제다. 특히 중국이 남중국해에 건설 중인 인공섬을 두고 미국은 주변국을 위협하는 패권확장 행위로 보고 이를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번 정상회담에 앞서 22일 조지워싱턴대 강연에서 "힘이나 강압이 아니라 외교를 통해, 국제법에 근거해, 평화로운 과정으로 해양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같은 날 공개된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서면인터뷰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난사군도(南沙群島·스프래틀리 제도)의 일부 주둔기지에 대해 관련 건설 및 시설관리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는 남중국해 항해의 자유와 안전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며 상반된 주장을 폈다.
그러나 양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인권문제를 놓고도 대립이 날카로워 보인다. 수전 라이스 보좌관은 중국의 인권상황을 열거하며 "인권문제를 놓고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공개로 중국에 지속적인 인권위반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우리의 우려를 모든 급에서 표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인권문제를 내부의 문제로 간주하며 미국의 잣대로 중국을 압박하지 말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 기후변화 협력·'공중충돌 예방' 조치 나올 듯 = 그러나 양국이 서로 협력을 꾀할 사안도 적지 않다. 우선 12월 파리에서 열릴 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공동 협력을 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양국은 온난화의 주범인 탄소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감축하는 방안을 중점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 사이에 공중충돌 위험을 피하기 위한 준칙도 마련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미국 정찰기에 대한 중국의 위협비행 논란이 제기되면서 양국 사이에 우발적인 충돌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바 있다.
양국은 이란 핵문제를 비롯해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논의하고 대(對) 테러에 대한 공조 입장을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2008년부터 양자 투자협정(BIT) 체결을 위한 협상을 추진해왔으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양국 정상은 중국의 경기둔화와 금융불안 문제도 논의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밖에 일본의 안보법 제·개정과 내년 1월 대선을 치를 대만 문제도 대화 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