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현승은 구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단어들을 길어 올려 시를 직조한다.
새로운 각도로 일상을 들여다보는 그의 눈은 "꿈조차 없다면 너무 가난한 것 같다"는 할머니의 말을 "절망조차 없다면 삶이 너무 초라한 것 같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꿈'을 '절망'과 동일시하는 그의 시선에는 육체로 경험하는 삶의 맨얼굴이 오롯이 배 있다.
이현승의 세번째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펴낸곳 창비)이 삶의 아이러니로 가득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시 '이것도 없으면 너무 가난하다는 말'을 두고 문학평론가 이찬은 시집에 포함된 '주름, 몸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제목의 해설을 통해 "시인이 오랫동안 품어왔을 실천적 태도와 윤리학적 비전을 돋을새김의 필치로 그려냈다"고 평한다.
'물론 시인에게 꿈이란 곧 절망의 다른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저 비극적 허무감에 시인이 흠씬 젖어들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가 더 나은 삶을 향한 사람들의 원초적 충동에서 알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것이 비록 실패와 고통과 절망만을 안겨준다 하더라도 이것도 없으면 너무 가난하다는 말을 바보처럼 믿고 있을 것이 틀림없기에.' (120, 121쪽)
◇ "섬세한 필치로 한국인들의 육체성, 또는 시인 제 자신의 몸의 정치경제학 탐사"
'꿈이 현실이 되려면 상상은 얼마나 아파야 하는가./ 상상이 현실이 되려면 절망은 얼마나 깊어야 하는가.// 참으로 이기지 못할 것은 생활이라는 생각이다./ 그럭저럭 살아지고 그럭저럭 살아가면서/ 우리는 도피 중이고, 유배 중이고, 망명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뭘 해야 한다면// 이런 질문,/ 한날한시에 한 친구가 결혼을 하고/ 다른 친구의 혈육이 돌아가셨다면,/ 나는 슬픔의 손을 먼저 잡고 나중/ 사과의 말로 축하를 전하는 입이 될 것이다.// 회복실의 얇은 잠 사이로 들치는 통증처럼/ 그렇게 잠깐 현실이 보이고/ 거기서 기도까지 가려면 또/ 얼마나 깊이 절망해야 하는가.// 고독이 수면유도제밖에 안되는 이 삶에서/ 정말 필요한 건 잠이겠지만/ 술도 안 마셨는데 해장국이 필요한 아침처럼 다들/ 그래서 버스에서 전철에서 방에서 의자에서 자고 있지만/ 참으로 모자란 것은 생활이다.'
이찬의 해설을 빌리면, 이현승의 시는 결국 '사회의 정치경제학적 압력과 배치와 관계망에 의해 규율되고 통어되는 우리 시대 한국인들의 육체성, 또는 시인 제 자신의 몸의 정치경제학을 섬세한 필치로 탐사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래서일까, 숙명적으로 동시대인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는 몸을 지닌 시인은 제목부터 적나라한 '봉급생활자'라는 시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나가고 싶다고 느끼면서/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면서 더 간절해진다./ 간절해서 우리는 졸피뎀과 소주를 섞고// 절박한 삶은 늘 각성과 졸음이 동시에 육박해온다./ 우리가 떠나지 않는 이유는 여기가 이미 바깥이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삶이 바로 망명 상태이다./ 얼음으로 된 공기를 숨 쉬는 것 같다.// 폐소공포증과 광장공포증은 반대가 아니며/ 명백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되묻는 습관이 있다./ 그것이 바로 다음 절차이기 때문이다./ 저것은 구름이고 물방울들의 스크럼이고 눈물들의 결합의지이고/ 피와 오줌이 정수된 형태이며 망명의 은유이다.// 그러므로 왜 언제나 질문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어제 꿈에 당신은 죽어 있었어요./ 나는 당신이 살아 있는 시점에서 정확하게 그것을 보았어요./ 지금 당신은 죽어 있지만요.// 구름의 그림자가 도시를 뒤덮었다./ 파업이 장기화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