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밖에도 마운드에서는 역대 시즌 최다 20승 투수와 두 자릿수 승수 투수 배출 등이 기대가 됩니다. 안지만(삼성)의 역대 최다 홀드(2012년 SK 박희수 34개) 도전도 눈여겨 볼 기록입니다. 팀 기록도 풍성한데 삼성은 최초로 100안타 이상 선수 10명을 배출했고, 넥센과 함께 역대 팀 시즌 최다 안타를 경쟁 중입니다.
이런 기록들은 경기 수 확대가 가져온 선물입니다. 아시다시피 올해는 신생팀 케이티의 가세로 9구단에서 10구단 체제로 바뀌면서 경기 수가 늘었죠. 팀당 128경기였던 지난해보다 16경기나 늘어 144경기를 치릅니다. 경기 수가 불어난 만큼 양과 관련된 기록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기록들은 KBO 리그 사상 최초이기에 값집니다. 1982년 프로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33년 동안 전인미답이었던 고지들을 밟은 역사입니다. 연일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 속에 힘겹게 경기력을 유지한 끝에 얻어낸 결실들이기에 박수를 받을 가치는 차고 넘칩니다.
▲박병호 50홈런, 지난해라면?
하지만 이들 기록의 진정한 가치는 내년부터입니다. 올해는 아직까지 비교 대상이 없는 까닭이죠. 올 시즌의 기록들은 144경기, 동일한 조건이 조성될 내년 이후에야 가치가 더욱 드러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엄밀히 따져 올해 쓰여진 기록들은 어쩌면 필연적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경기 수가 많아진 만큼 최고가 아닌 최다 기록은 예년보다 유리한 부분이 있는 겁니다. 타율이나 출루율, 평균자책점 등의 통계나 확률이 아니라 수량과 관련된 기록, 즉 홈런이나 안타, 도루 등은 경기 수가 많으면 수치도 늘 수밖에 없겠죠.
타점도 마찬가집니다. 현재 140타점을 기록 중인 박병호는 2003년 이승엽(삼성)이 세운 한 시즌 최다 기록인 144타점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당시 이승엽은 팀당 133경기 체제에서 131경기를 소화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박병호는 올 시즌 꼭 131경기를 뛰었습니다. 넥센이 135경기를 치른 가운데 박병호는 오른 중지 통증으로 4경기에 결장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넥센과 박병호는 23일까지 9경기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잔여 경기에서 박병호가 타점 5개를 추가한다면 이승엽의 기록을 넘을 수 있습니다. 남은 경기를 모두 뛴다는 가정 하에 박병호는 140경기 출전에 145타점 이상을 올린다는 계산이 나오는 겁니다.
▲기록의 진가는 비교할 때 드러난다
테임즈의 40-40 도전도 같은 차원이겠죠. 지난해라면 테임즈는 2000년 박재홍(당시 현대) 이후 15년 만의 KBO 리그 30-30 클럽 가입에 만족해야 했을 겁니다. 23일까지 테임즈는 NC가 134경기를 치른 가운데 132경기를 뛰었습니다. 현재 43홈런 37도루를 기록 중입니다.
지난해라면 소속팀이 128경기, 테임즈는 126경기를 소화한 가운데 시즌이 종료됐을 터. 그렇다면 테임즈는 41홈런, 36도루로 올 시즌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테임즈는 10경기를 더 남겨놓고 있습니다. 여기서 도루 3개를 추가하면 역사적인 40-40 클럽을 개설하게 됩니다. 경기 수 확대로 갖게 된 천금의 기회인 것이죠.
어쩌면 딴지(?)로 읽힐지 모르는 이번 편지는 올해 쓰여진 풍성한 대기록들을 폄하하자는 의도는 결코, 절대 아닙니다. 팬들을 위해, 또 팀의 성적을 위해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린 선수들의 노력은 언제나 숭고합니다. 저 역시 새 기록들의 탄생을 가슴 뛰게 바라고 있습니다.
다만 대기록들의 가치과 의미를 더 정확하게 알자는 취지입니다. 올해의 기록들은 축하할 일이되 같은 조건 하의 경쟁자들이 나올 내년 이후 그 가치를 더욱 더 깊게 음미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P.S-소심한 성격에 다시 덧붙입니다. 박병호의 지난해 52홈런은 128경기 체제에서 나온 기록이었습니다. 2003년 이승엽의 한 시즌 최다 56홈런과 1999년 54홈런, 역대 3위인 2003년 심정수(당시 현대)의 53홈런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승엽과 심정수는 133경기 체제였고, 1999년에도 각 팀들은 132경기를 치렀습니다. 그런 점에서 박병호의 지난해 52홈런 기록은 역대 4위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지녔을 겁니다. 이번 편지의 주제와는 반대로 더 적은 경기 수에도 이뤄낸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기록의 겉만이 아니라 속살도 발라내 맛보자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