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통일항아리'를 보면 '청년희망펀드'가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된 '청년희망펀드'가 옆길로 새고 있다. 모금운동으로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갸우뚱했는데 돈을 걷는 방식을 놓고도 잡음이 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년 고용을 위한 재원 마련에 저부터 단초 역할을 하고자 한다"는 이유를 들어 펀드조성방안을 지시했다. 정치인과 고위공무원들의 기부 약속이 이어졌다. KEB하나은행과 신한·국민·우리·농협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이 펀드를 개설했고, 박 대통령은 펀드 '1호 가입자'로 기부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대열에 동참했는데, 서열을 감안했을까, 대통령의 꼭 절반인 1천만원 일시금과 매달 월급의 10%를 기부하기로 했다. 신한·하나·KB금융 등 3대 금융지주 회장은 1천만원을 일시금으로 가입하고 연봉 반납 금액의 50%를 청년희망펀드에 넣기로 했다.

그런데 '자발적'이라던 당초 취지와 다르게 궤도이탈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21일 시중 은행 중 가장 먼저 펀드상품을 출시한 KEB하나은행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강제모금 활동이 벌어졌다.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하나은행은 '1인 1계좌 원칙'을 담은 공문을 각 영업점에 내려보냈고, 영업점은 직원들에게 시한을 정해주며 '청년희망펀드에 신규가입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은행측은 영업점별로 가입률을 통계관리한다고 하니 사실상 '강제모금'에 다름 아니다. 은행간에도 실적 모금 경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기부로 청년취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는 핀트가 맞지 않다. 실업문제의 핵심에 비껴나 있는 것이다. 일자리 문제는 재원이 부족해서 그런게 아니다. 대기업이 사내 유보금을 쌓아놓고도 고용에 소득적이고 전반적인 경기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으로 고용을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총리, 고위공무원, 정치권이 기부대열에 동참하자 덩달아 경제계도 들썩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재계에는 "기부로 할 일 다했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청년희망펀드에 20억을 기부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박현주 회장이 20억 냈는데 우리는 얼마를 내야 하나, 이 돈이 어디에 쓰일 지도 모르는데 얼마나 내야 할 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솔직한 심경일 것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의 입장은 바뀌었다. 펀드의 목적이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작은 정성을 보태는 것'으로 변경됐고, 대기업의 돈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당초 정부가 발표한 펀드의 취지는 '일자리 창출 지원'이었는데 갈팡질팡 혼란스런 상황이 연출됐다. 그러나 기업측에는 역시 부담일 것이다.

청년희망펀드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일선 부처에서 충분한 검토도 없이 갑작스럽게 시행됐다. 구체적인 안도 마련돼 있지 않고 재단도 구성되지 않았는데, 부랴부랴 모금부터 실시됐다.

정부에서 고위직은 지낸 한 인사는 "정부가 예산을 놔주고 돈을 거둬서 청년 일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것은 준조세를 거두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다"면서 "오죽 정부가 정책적 수단이 없으면 모금을 하겠는가, 이건 막장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남북관계 복원이 요원할 때 당시 정부는 '통일항아리'를 만들어 통일에 대비한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지금 통일펀드는 얼마나 모였는지 어느 기관이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 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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