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은 18일 문제 수류탄과 같은 생산라인에서 만들어져 로트번호가 동일한 수류탄을 모두 수거해 내년 3월까지 전량을 폭발·분해 시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른 로트번호를 가진 동종 수류탄에 대해서도 정밀검사를 실시한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9월 해병대 폭발사고에 이어 두 번이나 인명을 살상한 동일 로트번호의 수류탄이 다시 사용돼 장병들 안전이 위협받는 일은 일단 없어진 셈이다. 다른 로트번호의 수류탄까지 꼼꼼히 살피기로 한 만큼 사고재발 가능성도 낮아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처방은 타당했어도, 시점이 늦은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수류탄의 종류는 물론, 훈련병이 안전핀을 제거한 뒤 던지기 직전에 손에서 터졌다는 점 등 지난해 해병대 사고와 이번 사고는 판박이다.
뿐만 아니라 전량수거 결정 발표가 50사단 사고 직후가 아니라, 5일 뒤에나 이뤄진 점 안일했다는 지적이다. 군은 당초 2020발을 표본조사하겠다고 했다가, 비판적 여론이 제기되자 뒤늦게 태도를 바꿨다. 당초 국방부는 "2020발은 해병대 사고 뒤 표본 1010발의 두배다. 2020발 시험에서 문제가 나오면 아마 전량 폐기 쪽으로 갈 수도 있다"면서 전량수거를 '조건부 조치'로 언급했다.
국회 국방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은 "전수조사는 늦었다. 지난해 해병대 사고 때 바로 이뤄졌다면 이번에 슬픈 일이 재발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나마 육군이 여론의 눈치를 보고 강하게 밀어붙여 이번 전수조사를 하게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과연 이번 전수조사에서 사고 원인이 규명될 수는 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문제 수류탄 가운데 1000발은 완성탄 폭발시험, 1000발은 부품·지연제 분석시험에 쓴다. 나머지 5만3000여발은 신관 폭발시험을 실시한다.
문제는 완성탄 폭발시험에서 '3초 미만' 조기폭발의 결함이 확인되더라도, 해당 표본은 폭발해버려 존재하지 않게 되는 탓에 원인 규명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 다른 시험에서 동일 증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원인 불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지난해 6월 문제 수류탄과는 다른 로트번호의 동종 수류탄 정기검사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100발의 폭발시험 표본 중 2개 수류탄이 3초가 되기 전에 터졌다. 그런데 신관 기능시험에서는 조기폭발 결함을 보인 표본이 발견되지 않았다.
나아가 불량 여부 판정 기준이 30여년 전 미군이 발간한 매뉴얼을 따른다는 점도 현행 품질시험의 타당성에 근원적 의문점을 남긴다. 국회 국방위 관계자에 따르면 수류탄 신관의 폭발시험 규정은 미군이 1984년에 발간한 'TM9-1300-214'와 1987년 판인 'SE742-1330-94-350' 등에 의존한다. 군 당국은 이를 준용해 신제품 수류탄 4~5초, 보관 수류탄 3~6.5초 등을 폭발 지연시간의 합격범위로 정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 장병의 안전에 직결되는 규정이 한 세대전, 게다가 기후조건이 상이한 미국에서 정한 숫자에 의존한다는 얘기다. 어떻게 30년이 되도록 우리 군은 자체 기준조차 마련하지 못했는지 한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