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이 파탄 나게 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기존의 '유책주의' 판례를 고수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5일 바람을 피워 혼외자를 낳고 약 15년 동안 별거한 남성이 아내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에서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
☞ 전원합의체 판결문 전문
대법관 7명이 이같은 다수의견을 냈지만, 6명(민일영·김용덕·고영한·김창석·김신·김소영)이라는 적지 않은 대법관이 반대의견을 냈다.
대법원은 "이혼을 널리 허용하면, 많은 경우 여성 배우자가 생계나 자녀부양에 어려움을 겪는 등 일방적 불이익이 크므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 배우자 보호에 그 취지가 있다"고 유책주의에 대해 설명했다.
이른바 '축출 이혼'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는 협의 이혼 제도를 두고 있어 유책배우자도 성실한 협의를 통한 이혼의 길이 열려있다"면서 "전체 이혼 중 77.7%가 협의이혼으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유책배우자의 행복추구권을 위해 재판 이혼까지 파탄주의 채택의 필연적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사법연감을 보면 지난해 이혼 소송 접수 건수는 1심 기준으로 4만1050건이고, 협의이혼은 13만3345건이다.
앞서 1976년 A씨와 결혼한 B씨는 1998년 다른 여성과 혼외자를 낳은 뒤 2000년 집을 나갔다.
B씨는 15년 동안 혼외자를 낳은 여성과 동거를 하다 2011년 A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냈지만, 1·2심은 외도한 유책배우자에게 이혼 청구권이 없다는 기존 판례에 따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 50년 동안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에게 이혼 청구권을 주지 않는 '유책주의'를 사법부가 고수해온 까닭에서다.
대법원은 시대 분위기에 따라 유책주의에 대한 재논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지난 6월 26일 한 차례 공개변론을 열었지만, 이날 판결을 통해 "파탄주의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결론내렸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혼인관계가 사실상 깨졌다면 누구의 잘못인지 묻지 않고 이혼을 하도록 하는 파탄주의가 인정되고 있다.
대법원은 "파탄주의를 허용하는 여러 나라에서는 상대방이나 자녀가 가혹한 상황에 빠지면 이혼을 허가하지 않는 일명 '가혹조항'을 두거나 이혼 후 부양의무를 지우는 등 상대배우자를 위한 보호 장치가 입법적으로 마련돼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아무런 장치가 없다"는 점도 이번 판결을 통해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