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사정 합의, 정부와 기업이 악용말아야

노사정위원회는 어제 노동개혁의 핵심 쟁점인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에 대한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동안 첨예하게 대립해왔던 일반해고 문제의 경우 노사 및 전문가 참여 아래 전반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되 제도 개선까지는 정부가 노사와 협의를 통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다.

임금피크제 도입과 관련된 취업규칙 변경 사안도 정부가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하는 유권해석을 마련하기로 했다. 극적인 합의는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대타협’이란 표현을 붙이기 힘든 불완전한 합의 수준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압박한데 따른 졸속 타협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정부가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기로 한 것과 관련해, '충분한 협의'라는 애매한 표현이 논란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크다.

노사정 대타협이 불안정하게 이뤄지면서 노동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의 중앙집행위에서조차 분신사태가 발생하는 등 강력한 반발이 나오는 상황이어서 대타협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노동계가 우려하는 것은 노사정 합의결과가 일자리를 늘리는 효과는 없고 고용의 질은 저하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크다. 임금피크제가 청년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보다 정년연장에 따른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증가분을 보전하는데 쓰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노동계의 우려다.


또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를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노동유연성보다는 고용의 질 저하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노사정 대타협이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니다. 노동개혁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첨예한 노사 현안들을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노사정이 최대공약수를 마련하려 노력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불안정한 합의를 얼마나 완성도 높은 개혁으로 추진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는 정부나 기업이 노사정 대타협 정신을 얼마나 지키려하는가가 관건이다. 특히 정부는 노사정 합의를 빌미로 일방적으로 노동계를 밀어붙이려 해서는 곤란하다.

정부는 일자리를 늘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노동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왔다. 그렇다면 노사정 합의의 결과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나타나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인건비를 줄이고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일반해고를 무기로 고용안정성을 해치는데 악용하려는 움직임을 철저히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노동개혁이 노동자들의 일자리 나눔으로 나타나고 또 청년일자리를 늘리는데 도움이 되지도 않은채 기업들만 배불리고 힘의 우위를 통해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무기로 쓰인다면 이는 노동개혁이 아니라 노동개악, 노동탄압일 뿐이다.

또한 앞으로 입법 책임을 맡은 국회가 제역할을 해야한다. 여당이 청와대 의중만 살핀 채 숫적 우세를 앞세워 밀어붙이기 보다 노사정 합의의 정신을 살리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 어느 일방의 밀어붙이기로는 결코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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