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소에서 만난 박형식은 살이 많이 내린 모습이었다. 소년처럼 해맑은 미소는 여전한데, 어딘가 단단해진 느낌이 들었다. 조금 피곤한 기색이 엿보였지만 이야기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생각보다 박형식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까다로운 질문에 침착하게 답을 이어나가는 모습에는 어른스러운 여유가 있었다. 아직 배역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탓인지 혹은 눈에 띄게 성장한 탓인지 알 수는 없다. 중요한 건, 그가 이제야 비로소 한 사람의 배우로 우뚝 서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박형식과의 일문일답.
▶ 드라마 '상류사회'가 끝났다. 뭐하고 지냈나.
- 많이 먹었다. 종방연에서 고기 먹고, 치킨, 쌀국수, 피자, 파스타 등 있는 대로 전부 먹었다. 다시 운동해야 돼서 이런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 '상류사회' 유창수 역으로 이미지 변신을 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 가장 집중하고 노력한 건 발성과 발음이다. 다른 작품들에서 쌓은 경험이나 경력도 많이 사용했다. '진짜 사나이' 아기병사와 '가족끼리 왜 이래' 차달봉 등으로 이름을 알려서 밝은 이미지로 굳어진 게 아닌가 싶다. 많은 분들이 못 봤을 뿐이지 그 전에도 진지한 역할은 많이 했다. 이미지 변신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제 입장에서는 연기를 해온 거다. 사실 그런 남자의 눈빛을 보여줄 기회는 없기도 했다.
▶ 본인의 이미지가 그렇다는 것을 알기에 어려운 지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
-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하면서 캐릭터나 작품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더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얼마나 캐릭터에 자신이 있고 잘 표현할 수 있느냐에 따라 부담은 달라진다. 유창수 캐릭터는 굉장한 도전이었다. 그렇지만 해내고 싶었고 해보고 싶었다.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도전 의식이 계속 생기고 부딪치게 되는 것 같다.
▶ 시청률도 결국 10%25까지 나왔다. 처음과 끝의 분위기가 사뭇 달랐을 것 같다.
- 요즘에 시청률 두 자리가 나온 건 기적 아닌가. (웃음) 사실 처음에는 작품도 기대작이 아니었고, 캐스팅 됐을 때만 해도 '얘가 아직 이럴 때는 아니지 않나' 이런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좋은 댓글이 별로 없었다. 저도 스물 아홉 살 본부장 역할을 하기에 너무 어려 보이지 않을까, 소화하지 못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다행히 저는 그만큼 성숙해 있었고, 새로운 스타일의 본부장을 만들어낸 것 같아서 자신감도 생겼다. 이제 어떤 역할이든 겁내지 말고 도전해보려고 한다.
▶ 나름대로 역할 소화를 위해 노력한 부분도 있었겠다.
- 창수는 순수해서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대사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냥 제가 캐릭터 그대로만 표현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었다. 먹는 걸 좋아해서 턱 윤곽이 드러난 적이 별로 없는데 창수는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푸는 애라 운동에 익숙해야 했다. 시청자들이 볼 때 운동하는 '척'처럼 보이면 안되니까. 엄청 고생이었다. 쉬면서 해야 되는데 촬영하면서 하려니 체력적 한계에 부딪쳤다. 운동한다고 연기에 집중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원래 먹고 몸을 키워 놓은 다음에 줄여야 되는데 얼굴 상태는 유지해야겠고…. 그래서 이제 시작하려고 한다. 제 몸은 원래 키워도 우락부락하게 커지는 몸은 아니라고 하더라.
▶ 드라마에서 임지연과 선보인 멜로 연기가 호평을 받았다. 실제로 연애 할 때는 어떤지 궁금하다.
- 너무 도도하면 힘들 것 같고 적당히 지조를 지키면서도 리드할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재밌지 않나. 제가 그런 성격이 아니라 여자가 그렇게 해줘야 움직인다. 저는 상대방에 따라 연애 스타일이 달라지는데 우유부단하고 상대방에게 맞춰간다. 그래서 드라마 속 이지이처럼 저를 자극하는 성격이 재밌고 좋을 것 같다.
-지금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일찍 기회가 왔었다면 '열심'과 '노력'이라는 단어가 제 안에 없었을 것 같다. 무명 시절 3년 동안 저를 알리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고, 노력만으로는 안된다는 한계에 부딪쳤을 때 만난 것이 '진짜 사나이'였다. 정말 열심히 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몸에 배어서 열심히 하는 게 익숙해졌고 조금씩 깨닫고 늘어서 지금까지 온 것 같다. 한 선배님이 제게 돈에 너무 연연하고,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훗날에도 절 지켜줄 건 실력 뿐이니까 연기 공부 많이 하라고 한 말씀이 기억난다. 선생님들이나 선배들과 오래 함께 한 시간이 많았고 아무래도 배우는 게 달랐다. 만약 또래들과 어울렸으면 쉽게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좀 더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다.
▶ 연기로 조언도 많이 구하겠다.
- 물론 조언을 구할 분들은 많고, 조언도 많이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부딪친 후에 배워야 그게 제 것이 된다. 느끼지도 않았는데 조언만 구해봤자 소용이 없다. 사람은 항상 절실함이 만드는 거다. 절실해야 내 것도 되는 거고.
▶ 스스로 성장을 위해 하는 일들이 있나?
- 앞으로 쌓아야 될 게 많은데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욕심이 많아서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저는 뭔가 할 때마다 소모가 돼서 계속 새로운 것을 채워 넣어서 성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채우는 시간보다 소모하는 시간이 더 많아서 무섭고 두렵다. 바닥이 점점 보이는 것 같다. 요즘 그런 생각으로 가득하다.
▶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궁금하다.
- 영어와 외국어 공부도 해야 되고, 독서하면서 생각을 가다듬고, 영화 보면서 표현도 경험하고, 피아노나 기타도 배웠으면 한다. 시작한 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 운동도 해야 한다. 언어는 공부를 한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해외로 가야 하지 않을까. 여유가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아직은 다 할 수가 없다.
▶ 이전과는 마음가짐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
- 아무래도 책임감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그만큼 해내야 되고, 해내고 싶다. 뭘 하나 하더라도 쉽게 할 수는 없고, 더 자극 시켜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계속 믿어주는 만큼 열심히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연기는 계속 작품이 들어오면 할 수 있고 기회가 많다. 그런데 노래는 앨범을 내주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이제는 아쉬워졌다고 해야 하나. 앨범이 나올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제 마음 속에는 비중이 반반이다. 해소가 되지 않으니까 노래방 가서 노래도 부르고 연습도 한다. 자리가 없어서 하지 못할 뿐, 마음은 항상 하고 싶다. 때가 되면 활동하지 않을까.
▶ 연기에 대해 가장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멤버는 누구인가.
-(임)시완이 형이다. 고민하는 부분이 비슷하고 연기에 대한 부분, 앞으로 해나가야 하는 것들, 모든 게 비슷하다. 제가 자문을 많이 구하고, 형은 간접적으로 절 보면서 '얘는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라는 느낌으로 서로 함께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다.
▶ 제국의아이들이 초반에 이름을 알리기까지는 광희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안다.
- 형이 방송에서 밝은 모습만 보이기 때문에 쉬워 보이고 가벼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형은 방송에서 자신이 아니라 우리 그룹을 알리려고 했다. 예능 프로그램 하나를 하더라도 옆에 멤버들이 있었으면 했다. 형이 아닌 어느 멤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형은 멤버들도 함께 올라와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예능을 하는 멤버가 아니었다. 형처럼 타고난 말재주가 많지 않으니까. 형은 연습생 때부터 그랬다. (웃음) 형 마음은 알겠지만 형처럼 다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기대만큼 못 따라 가준 게 사실이고, 옆자리에 못 있어줘서 미안한 부분이 있다. 그런 마음은 항상 있었다.
▶ 분야는 다르지만 인정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 형이 '무한도전' 멤버가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뿌듯한 건 5년 동안 고생해서 그 자리까지 갔다는 거다. 대단한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바로 주목을 받아서 5년 내내 쉴 새 없이 일하고 있는 건데 지치지 않고 언제나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지 않나. 생활력과 생존력이 정말 강하다. 절대 평범한 사람은 아니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 기회가 많이 없는 상태에서 주말 예능 황금 시간대 고정 출연인데 할 거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미치지 않고서야 하겠다고 했다. (웃음) 열심히 하겠다면서 가보니 군대더라. 장혁 선배라는 스타 남자 배우를 만나서 너무 신기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하니까 '군대 왔는데 뭘 잘 부탁해'라고 하셨다. 형들과 친해져서 형들 보러가는 재미에 힘들어도 힘든 게 아니었다. (김)수로 형도 정말 재밌는데 비방송용으로 시원하게 웃음을 준다. 정말 감사함을 크게 알게 해준 프로그램이다.
▶ 그럼 이후에도 예능프로그램을 출연할 계획은 있나.
- 리얼인 예능프로그램은 괜찮다. 토크쇼는 말 그대로 마음먹고 웃기기 위한 재밌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전부 편집된다. 제가 재밌게 말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저를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은 괜찮다.
▶ 막내 아들 같은 느낌인데 어머니에게는 어떤 아들인가.
- 딸 같은 아들이다. 설거지도 가끔 하고 그랬다. 제가 딸이길 바랐는데 아들이 나와서 딸처럼 키웠나 싶기도 하다. (웃음) 애교가 많았었는데 이제 잘 못한다. 그래도 엄마가 '우리 아들, 사랑해'라고 하면 '우리 엄마'하면서 안아주는 성격이다.
▶ 지금은 자취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제테크는 혼자 하나?
- 돈 벌어서 할 줄 아는 게 없다. 계속 모으다가 집이랑 차를 샀고, 집에 들여놓을 것들을 샀다. 부모님이 돈 관리는 데뷔하고 나서 제게 전적으로 맡겼다. 워낙 돈을 잘 쓰지 않는다. 만약에 이것 저것 샀으면 제게 안 맡겼을 것 같다. 짠돌이인 걸 아니까 맡겼지. (웃음) 너무 돈을 안 써서 세금만 엄청 나온다. 저에 대한 투자는 좀 해야 되는데 그것도 아끼는 편이다.
▶ 친구들도 만나며 한창 청춘을 즐길 때다.
- 어릴 때부터 '집돌이'였다. 집이 제일 좋았다. 학교 다닐 때도 그냥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밥 먹고 형과 노는 게 더 재밌었다. 예전에 멤버들끼리 살 때는 남자가 9명이라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다. 작품을 하다 보면 그런 시간이 필요하더라.
▶ 외롭거나 그렇지는 않나?
- (일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그렇지 않다. 친구가 별로 없다. 시완이 형이나 멤버들, 초등학교 친구들 정도? 귀찮아서 잘 안 나간다. 만나서 하는 게 뻔하다. 술 먹고 그러는 거. 저는 술을 잘 못 마시니까 찾아가지 않게 되더라. 클럽도 많이 다녀봤고 그 나이 또래가 하는 건 다 해봤다. 단지 제 성격과 맞지 않아서 하지 않는 것 뿐이다.
▶ 이제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차기작에 대해서는 생각을 가지지 않으려 한다. 돈이나 인기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다. 길을 잘 가야겠지만 여러 가지 해보고 싶었던 작품을 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 전형적이고 형식적인 이야기지만 감사한 분들에게 말씀을 다 못한 게 마음에 남는다. 우리 스태프들이 정말 고생이 많았다. 사실 제가 많이 못살게 굴었다. 그만큼 저도 부담이 많이 있었고, 예민했었다. 많이 맞춰준 스태프들에게 너무 고맙다. PD님과 작가님, 함께 한 또래 배우들과 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배우가 잘 나오려면 그런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말을 전할 기회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