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의 판단은 현재 나와 있는 자료로는 (산양의) 주요 서식지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범대위 측에서 주장을 하고 있는 내용도 있으니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환경성 등의 검토를 맡았던 민간전문위원장도 고심을 토로했다.
이런저런 의견이 오가던 중 다른 민간위원도 우려를 나타냈다. “산양문제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논란이 되고 있는 점이 신경이 쓰입니다. 빠르게 의사결정을 하기보다는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논의가 길어질 낌새가 보이자 정부 측 위원이 나섰다. “산양과 관련해서는 민간전문위원회가 어느 정도 잠정의견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에 대한 국정감사장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국립공원위원회의 지난달 28일 회의록 일부가 공개됐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안이 조건부 가결된 바로 그날의 회의록이다.
우 의원이 다그쳤다. “익명처리를 한다고 가렸지만 사실 이름이 다 보입니다. (민간전문)위원장이 고민해보자고 이야기 하는데 국장이 논란을 끝내고 있어요.” “논란을 끝내는 그런 맥락으로 발언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 의견 중에 하나였을 뿐입니다...” A 국장의 반박이 이어졌다.
설악산 케이블카의 운명이 결정된 바로 그날의 회의록은 이렇게 드러났다. 야당이 공개한 회의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날 정부 위원들의 의견은 한결 같았다. 환경부 소속 위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국장의 문제의 발언 직후, 국립공원위원회 위원장도 “그간 시간이 많이 지연됐으므로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위원들을 채근했다.
환경부 소속 위원은 이날 설악산 케이블카에 대한 경제성 분석에서 환경성 분석이 빠진 것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며 줄곧 방어하는 편에 서 있었다.
3년 가까이 환경부를 출입하면서 자연을 지키기 위해 개발 정책에 맞섰던 투쟁의 기억을 훈장처럼 여기고 사는 공무원들을 많이 봐왔다. 그들은 ‘사사건건 발목만 잡는다’는 다른 부처의 비아냥도 아랑곳없이 마구잡이 개발에는 분연히 맞섰고, 그렇게 환경부의 위상을 세워왔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들은 어디에도 우군이 없는 외로운 부처지만, 말 못하는데다 투표권도 없는 자연과 미래세대를 위해 일하는 유일한 부처라고 자부했다. 기자도 그런 곳이 환경부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 환경부가 이번에 설악산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도록 앞장서서 자문을 해주고 살뜰히 일정을 챙겼고, 그것도 모자라 국립공원위원회에서조차 찬성 쪽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공무원은 합법적 절차에 따라 행정을 해야 한다. 대통령의 지시라 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에 위배될 경우에는 그것을 집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 공무원의 책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공무원의 신분을 헌법으로 보장하는 이유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가결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절차적 결함이 있었다는 사실이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졌다. 가이드라인이 요구하고 있는 사회적 비용편익분석이 누락됐고, 이를 숨기기 위해 양양군이 보고서까지 조작하다 들통이 났다. 심의 자료를 3일 전에 전달하도록 한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케이블카를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설악산 국립공원, 그것도 멸종위기종 1급 생물이 살고 있고 희귀 식생대가 조성돼 있는 곳을 개발하는 사안이다.
여러 가지 의견이 충돌하는 위원회에서 환경부가 가진 한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환경부라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절차를 고집스럽게 밟아가며 회의를 진행해 결과를 얻었어야 했다. 가이드라인이 제시한 환경성 평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면, 의견을 모아 문제가 된 가이드라인을 수정하는 작업부터 다시 시작했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설악산에 4대강이 자꾸 겹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