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탐사보도팀이 수년간 걸쳐 기획 취재해, 6~7월에 방영 예정이었던 프로그램이 계속 미뤄지더니 결국 사라졌다. 해당 방송 내용은 '친일-이승만-박정희'를 다루고 있다. 내부에는 다뤄서는 안 될 것을 다뤄 방송이 사라졌다고 추측한다.
게다가 해당 방송을 만든 탐사보도팀장은 8일 인사발령을 받았다. 곧 취재기자들 역시 인사가 될 것이라는 소리가 내부에서 나온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작진과 탐사보도팀이 8일 발표한 글을 통해 살펴보자.
정부는 그동안 서훈 명단을 개인정보라며 공개하지 않았기에, 탐사보도팀은 대법원까지 가는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통해 70여만 건의 훈포장 명단을 올해 4월 입수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훈장 내역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고, 제작진은 발로 뛰어 정부가 감추면서 공개하지 않은 것들을 찾아냈다.
탐사보도팀은 여러 문제 중 취재를 두 가지로 압축했다. 하나는 지난 몇 년간 법원이 "조작됐다"며 무죄를 선고한 간첩사건에서 당시 수사관들이 훈장을 받은 것. 나머지 하나는 대한민국이 친일행적자와 일제식민통치를 주도한 일본인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간첩과 훈장>, <친일과 훈장>이라는 2부작이 발제돼 방송 일자도 사실상 확정됐고, 취재도 7월경 마무리됐다.
하지만 회사는 “민감한 내용이니 내용을 보고 방송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애초 <간첩과 훈장>, <친일과 훈장>은 시사기획 창을 통해 6월과 7월에 한 편씩 방송하기로 예정됐다가 5월 말 메르스(MERS) 사태가 터지면서 7월 말로 밀렸다.
그러던 중 6월 말 ‘이승만 정부 망명요청설’ 보도 이후 7월 초순부터 회사 분위기가 달라지더니, '8월에는 광복 70년 특집프로그램이 줄편성된다'는 이유로 7월말 예정 일정에 다른 아이템이 방송됐다. 이후 <훈장 2부작>은 돌연 방송 목록에서 사라졌다.
7월에는 상세한 방송 내용을 알고 싶다고 해 5~6페이지 프로그램 요약을 줬고, 그래도 모르겠다고 해서 30페이지 가원고를 줬다. 그 다음에는 팀장이 데스크를 본 원고를 요구해, 편집용 원고까지 전달했다.
제작진은 "수차례 기자들이 개인적으로 찾아가 읍소도 하고 설득도 하고 부서회의에서 큰소리로 논쟁도 벌였다. '내용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조율이 가능하니 잠정적으로라도 방송 일자를 잡자'고 하소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동안 제작진이 들은 말은 “민감한 내용이라서 그렇다”, “공식적인 발제는 하지 마라. 내용을 일단 검토한 뒤 제작팀하고 회의를 하자”, “국장이 여름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면 방송 원고를 보고, 국장과 부장, 팀장이 모여 한 번에 정리하자”, “국장에게 원고 줬다. 기다려라”, “훈장이 2부작 거리가 되는지 검토해 봐라”, “물건이 되는지 보고 결정하겠다. 부장이 검토 중이다”, “그 동안의 프로그램 제작 절차가 비정상이지, 지금 절차가 정상이다” 등이었다.
검토를 이유로 방송 일정이 잡히지 않고 미뤄지자, 탐사보도팀장과 취재기자들이 인사이동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내부에서 있었다. 우려는 실제로 일어났다. 8일 탐사보도 팀장이 교체됐다. 이제 취재기자들도 인사가 날지 모른다.
제작진과 탐사보도팀 기자들은 사측에 요구했다.
"더 이상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변명은 하지 마십시오. 탐사보도팀은 진정한 저널리즘을 구현하려는 KBS 기자들의 바람과 응원으로 만들어진 조직입니다. 일선 기자들의 열망을 분노로 바꾸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길 바랍니다."
이들은 아직도 궁금하다. KBS는 대체 무엇이 두려운 걸까.
*이 기사는 <훈장> 제작진 및 KBS 탐사보도팀 일동이 9월 8일 발표한 글을 바탕으로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