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중고교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중고교 교육정책을 펴고 있는 전국 교육감들이 국정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일제히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서울, 경기, 인천, 강원 등 수도권 4개 지역 교육감들은 8일 오후 공동성명을 내고 "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우리 사회가 이룩해온 민주주의의 가치와 부합하지 않으며, 자율성과 다원성의 가치에도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국가는 사회적 합의에 근거한 큰 틀에서 교육과정의 범주를 정하고, 그 허용 범위 내에서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교과서를 통해 교육과정을 보다 풍부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부산과 광주, 경남, 전남·북, 제주 등 6명의 남부권 교육감들도 오늘 오전 공동 성명을 내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수도권과 남부권 교육감들은 특히,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역사 교사 2,255명이 국정화에 반대하는 등 학계와 교육계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고,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만큼, 정부와 여당은 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재고해 줄 것을 요구했다.
9일에는 충남·북과 대전, 세종 등 4개 지역 교육감들도 국정화 반대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경기, 인천, 강원 등 수도권 4개 지역 교육감 공동성명서 |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중단되어야 합니다 최근 여당 대표의 국회 연설에서 다시 한번 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강조된 바 있습니다. 앞서 황우여 부총리겸 교육부장관도 여러 차례 국사 교과서 국정화 의사를 밝혔습니다. 조만간 확정 발표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립니다. 오늘 우리 교육감들은 정부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 발표를 앞두고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민의와 역사학계의 의견을 경청하여 진지하게 재고해주기를 간곡히 요청합니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서 우리 사회가 이룩해온 민주주의의 가치와 부합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추구해 나아가야 할 중요한 가치는 자율성과 다원성입니다. 사회 운영 원리에 있어서도 국가 주도성, 중앙 집중적 관리와 규제 대신 민간 자율과 자치의 시대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존중과 배려 속에 다양한 가치가 상생하는 세계시민교육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주도의 획일적 교육을 탈피하여 교육 주체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되는 자율적 교육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육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는 사회적 합의에 근거한 큰 틀에서의 교육과정의 범주를 정하고, 그 허용 범위 내에서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교과서를 통해 교육과정을 보다 풍부하게 하며, 이로써 다양한 인식과 상상력의 지평을 확대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미래 세대의 교육에 있어 ‘역사’가 갖는 중요성은 두말할 것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히는데 있어서 가장 근원이 되는 일입니다. 그만큼 역사 교육이 중요하며 그에 필요한 교과서는 한 나라의 학문 연구의 총체가 집약되고 정수를 담고 있어야 하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로 귀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올바른 국사 교육이 반드시 국사 교육과정 및 교과서의 국정화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우리 스스로 선택해온 교육과정의 다원화 및 자율화 흐름과 모순됩니다. 다른 교과에 비해 국사가 갖는 중요성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국가가 일방적으로 확정한 하나의 교과서로 획일적 교육을 받도록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 다양성과 창의성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서로 존중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과 시선이 때로는 선의의 경쟁도 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토론도 하면서 조화롭게 공존할 때 비로소 교육내용의 질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바른 역사관이 수립될 수 있습니다.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대해서 비단 저희만 우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2013년 뉴라이트 계열의 한국사 교과서 채택이 전무였던 전례가 있을 정도로 우리 역사에 대해 건강한 인식을 갖고 있는 국민들의 걱정스런 시선도 많습니다. 불필요한 논란과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결국 민심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 모든 역사학계의 비판이 들끓고 있습니다. 특히 며칠 전 서울대학교의 5개 역사학과 교수님들께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하고 정부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의견서에서 교수님들은 “‘교육의 자주성ㆍ전문성ㆍ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 정신과 합치하지 않으며,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국가와 사회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우려했습니다. 또한 “역사 교과서 서술을 정부가 독점하는 정책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통해 오랜 고난 끝에 이룩한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으며, 똑같은 역사 교재로 전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상상력과 문화 창조 역량을 크게 위축시키고, 민주주의는 물론 경제 발전에도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 2,255명도 "정부가 공언한 하나의 역사해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은 역사교육의 본질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 발행을 채택하고 있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육감들은 그 누구보다도 우리 아이들의 올바른 역사 교육을 고민하고 교육이 잘 이뤄지기를 염원하며 학교 현장에서 역사 교육이 잘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국사 교과서 국정화라고 하는 불필요한 제도적 역행으로 훼손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정부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중단하고 어떻게 하면 보다 올바르고 풍부한 역사 교육이 잘 이뤄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주기를 정중히 요청합니다. 2015년 9월 7일 강원도교육감 민병희 경기도교육감 이재정 서울특별시교육감 조희연 인천광역시교육감 이청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