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사다리' 비화된 사시 논쟁, 정작 놓친 것은…

(사진=자료사진)
사법고시 존치 논란이 뜨겁다. 로스쿨 출신들과 사시 준비생들이 연일 집단행동을 펼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찬반이 나뉘어 움직이고 있다. 심지어 법대 교수들까지 나뉘어 정면 대립하고 있다. 최근 고위공직자 자녀들의 취업 특혜와 맞물리면서 찬반 논쟁이 점차 가열되는 모양새다. '희망의 사다리' 같은 계층 담론으로 옮겨붙어 올바른 법조인 양성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법조계 세력 다툼이 되고 있다.

◇ 이해당사자에서 교수까지, 사시 논쟁으로 쪼개지는 법조계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들이 7일 서울 서초동 법원 기자실을 찾았다. 로스쿨 재학 자녀들을 둔 헌법재판소 두 재판관에 대한 기피 신청을 했다고 알리기 위해서다. 지난달 사법시험 폐지를 규정한 변호사시험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들은 두 재판관의 자녀들이 로스쿨에 입학해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시생들은 "로스쿨은 이제 법조계의 기득권이 돼 버렸다. 법조 엘리트들은 자녀들을 로스쿨에 보내거나, 스스로 로스쿨 교수가 되는 방법으로 이미 기득권의 한 축이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전직 대법관들 중에 상당수가 로스쿨 석좌 교수가 됐다. 얼마 전 국회의원 취업청탁 의혹에서 문제가 됐던 것도 로스쿨이었다"며 "사법시험이 폐지돼야 법조계의 카르텔이 깨진다고 하지만 오히려 로스쿨이야말로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기득권화 돼 버렸다"고 주장했다.

로스쿨 출신들도 단체를 출범하며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로만 구성된 '한국법조인협의회'(한법협)이 지난 4일 공식 발족해 활동을 시작했다. 가입 인원만 600명이 넘어 세를 과시했다.

초대 회장인 김정욱 변호사(변시 2회)는 "사시 존치 주장은 법조인 양성 시스템 퇴보를 뜻한다"며 "로스쿨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에 체계적 대응을 하는 것이 단체 설립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대한변호사협회가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공식 항의할 예정이어서 변호사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사시 존치 논란에는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교수들도 가세했다. 지난달 31일에는 전국 25개 로스쿨 교수들과 대한법학교수회가 각각 성명전을 내며 맞붙었다.


국회에서도 사시 존치를 적극 찬성하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토론 열기가 뜨겁다. 새누리당에서는 관악구가 지역구인 오신환 의원을 비롯해 김용남·김학용·노철래·함진규 의원 등 5명이 사법시험 존치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조경태 의원이 야당으로서는 처음으로 존치 법안을 발의해 찬성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반면 참여정부 시절 추진된 정책인 만큼 야당에서는 친노 의원들을 중심으로 존치 반대 기류가 강하다.

◇ '희망의 사다리' 등 계층론으로 번지며 감정싸움 격화

참여정부 시절부터 사법고시 폐지가 예고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 법조계가 떠들썩한 것은 제도 논의가 '현대판 음서제'나 '희망의 사다리' 등 계층 이동 담론으로 옮겨붙었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 자녀들의 취업 특혜 논란이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이들은 로스쿨 입학 및 취업 과정에 집안 내력, 학벌 등이 좌우될 수 밖에 없다며 사시를 유지해 '개천에서 용 나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희망의 사다리'론이다.

반면 로스쿨 출신들은 사시 존치 주장은 사시 출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현실에서 사시 공부를 하는데에도 로스쿨 등록금 못지않은 고비용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재반박한다. 감정에 호소하는 '희망의 사다리론'으로 로스쿨 제도를 일방적으로 폄훼하고 있다는 것.

주제가 계층 이동론으로 옮겨붙으며 세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어, 올바른 법조인 양성의 본래 취지를 잃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희망의 사다리와 평등을 유독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아직까지 판·검사가 되는 것이 곧 인생의 성공이고 계층 이동이라는 단순한 논리가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며 "어떤 법조인을 양성해야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양측이 서로 헐뜯으며 사시의 존치 또는 폐지만을 주장하고 있을 뿐 현재 드러나는 제도상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중견 변호사는 "로스쿨 입학 시에 젊은 학생을 선호하고, 집안이나 학벌에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며 "사시 존치 논란과는 별개로 로스쿨 운영의 불투명한 부분을 개선해 나가야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관계자는 "애초에 사시가 '희망의 사다리'로 여겨지기보다는 전관예우나 법조계 카르텔 형성의 주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에 로스쿨이 도입됐던 것이다"며 "역으로 로스쿨도 똑같은 비판을 받는다면 두 제도 운영에 모두 모순이 있다는 뜻이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경력 법관 임용 논란에서도 드러났듯이 현재 로스쿨 제도 하에서 어떤 판·검사를 뽑야아 하는지 충분히 숙고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며 "판·검사 임용 절차를 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하는 등의 노력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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