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V-리그 남자부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는 현역 선수였던 최태웅에게 깜짝 지휘봉을 맡겼다. 지도자 경험이 없는 현역 선수가 곧장 한 팀의 지휘봉을 잡은 사례가 없었던 만큼 최태웅의 선임은 완전히 다른 팀으로 만들겠다는 현대캐피탈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형'이었던 선배를 하루아침에 '감독님'이라고 부르게 된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물론, 최태웅 감독조차도 한동안 어색한 호칭이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어느덧 5개월이 지난 이들 사이에는 어색함이 사라졌다.
새 시즌 개막을 앞두고 국내 전지훈련을 마치고 일본으로 국외 전지훈련을 떠난 현대캐피탈은 '현대의 색'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잔뜩 침체된 선수단 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해 씨름 훈련을 도입하는 등 색다른 훈련법으로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감독이 되고 난 뒤 선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털어놓은 최태웅 감독은 철저한 분업을 통해 새 시즌을 준비했다.
최태웅 감독이 송병일 코치와 훈련 영상을 분석하는 동안 선수들은 여오현과 윤봉우, 두 명의 플레잉코치, 조세 체력트레이너와 함께 체력 훈련을 한다. 오후에는 최태웅 감독의 주도 아래 공을 활용한 훈련을 한다. 선수들의 일정은 끝이 나도 감독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오후 훈련이 끝난 뒤 밤늦게까지 영상을 분석한다.
◇최태웅의 현대캐피탈, 당장 성적에 목매지 않는다
최태웅 감독 체제의 특징은 여오현과 윤봉우를 플레잉코치로 선임했다는 부분이다. 최태웅 감독은 "둘 다 선수로만 두기에는 아까운 자원이다. 선수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경험이 너무 많다. 선수가 선수를 지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코치로 선임했다"고 설명했다.
감독의 선임부터 매 과정이 파격적인 선택이 계속되는 현대캐피탈의 올 시즌 목표는 놀랍게도 '성적'이 아닌 '정체성'이다. 최태웅 감독은 "당장 좋은 성적을 내면 좋겠지만 현대의 팀 색깔을 찾는 것이 먼저다. 그동안 매 시즌 성적에 목을 맸다. 길게 보고 세대교체를 하고 팀을 만들어 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태웅 감독이 진단한 현대캐피탈의 문제는 토스가 불안해도 일단 때리고 보자는 '뻥 배구'였다. 최태웅 감독은 상대 블로킹을 흔들 수 있는 연타를 통해 경기 분위기를 주도하는 경기를 목표로 했다. 무조건 빠른 토스를 활용한 배구가 아닌 다양한 공격수가 때리기 좋은 속도로 공을 배달하는 세터의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하지만 현대캐피탈은 새 시즌 두 명의 베테랑 세터가 갑작스레 팀을 이탈한 상황에서 노재욱과 이승원까지 두 명의 어린 세터로 한 시즌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점이 아쉽다. 일본 전지훈련을 통해 주전 세터의 윤곽을 가릴 계획이라는 최태웅 감독은 이승원보다 노재욱을 우선 기용한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