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부의 국민 안전 기능에다 소방방재청과 해경을 합친 초공룡 부처, 국민안전처가 탄생했다.
군 출신인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지명됐을 당시 재난 구조와 방재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언론과 야당의 반대가 있었지만 반향없는 메아리였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거대 여당의 힘이 안전의 전문가 여부와는 별개로 밀어붙인 결과였다.
그 이후 이런저런 사건·사고들이 끊이질 않았으나 국민안전처의 잘못은 크게 부각되지 않아 국민안전처와 박인용 장관에 대한 인식은 평균점 정도였다.
국민안전처의 문제점이 여지없이 노정된 것은 작은 세월호 참사라는 낚싯배 돌고래호 전복 사고다.
비바람이 세찬 풍랑에 뭍(전남 해남)으로 돌아가겠다고 낚싯배를 부른 사람들이나 응한 선장, 구명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돌고래호,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낚시꾼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의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구조는 전적으로 국민안전처, 해경과 해군의 몫이다.
해경은 신고를 접수하고서도 30분가량 늦게 출동했다는 비판론이 일고 있고,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사고 당일인 지난 5일 밤(7시쯤)부터 6일 아침까지 어떤 대응을 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해양경비안전본부장(해경청장)은 박 장관에게 제대로 보고를 했는지, 했다면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박 장관은 청와대에 어선 실종의 위중성을 전달했는지 의문이다.
지난 5일 저녁 제주 추자도 주변 해역에서 전복된 낚시 어선 돌고래호는 6일 오전 사고 해역을 지나던 민간어선 부부(박복연, 김용자씨)에 의해 발견됐다.
민간어선이 돌고래호 승선자 중 3명을 튜브를 던져 구조한 것이다.
그 시간까지도 해경은 돌고래호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사고 해역을 지났음에도 발견하지 못했다.
해경은 지난 5일 사고접수 후 해경 경비함정 29척, 해군함정 6척, 민간자율구조선 5척, 어업관리단 2척 등 선박 42척을 투입해 밤새 해상수색을 실시했다지만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해경 경비함과 해군 함정까지 40척 가까운 배가 크지도 않은 하추자도 근처를 샅샅이 수색했다면 뒤집힌 돌고래호 위에서 목이 터져라 구조를 외친 낚시꾼들을 찾지 못 했을 리가 없다.
구조된 낚시인에 따르면 당시 뒤집힌 배 위에 6명이 올라있었으며 함께 있었던 선장은 한명이라도 더 구하겠다며 “필사적으로 구조를 하다 미끄러져 실종됐다”고 말했다.
구조가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이뤄졌다면 최소한 6명은 구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야간투시장비만이라도 갖추고 수색에 나섰거나 조명탄을 사용했다면 구조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추자도 주민들은 6일 밤 한두 차례 소나기가 지나고서는 물결도 한결 잔잔해졌고 날씨도 괜찮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해경·해군의 35척이 '수박겉핥기'식 수색을 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된다.
해경은 조류의 흐름을 몰랐다거나 악천후에 칠흙같이 어두워 수색을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고 항변하지만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라는 대악몽에도 불구하고 해경과 해군의 구조·구난체계는 달라진 것이 전혀 없었다.
국민안전처는 새해 업무보고에서 2015년을 '안전혁신 원년의 해'로 정하고 '안전한 나라, 행복한 국민'을 조기에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안전처는 특히 전국 어디에서 발생하는 재난 안전사고이든, 육상에서는 30분, 해상에서는 1시간 이내에 특수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하여 현장 대응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조대는 1시간이 아닌 11시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고 그나마 국민안전처 소속이 아닌 민간 어선이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대국민 약속인 2015년 업무보고조차 했던 약속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7일 돌고래호 전복 사고와 관련한 근거 없는 유언비어 유포 행위에 대해 엄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3년 2월 25일 취임사를 비롯해 기회 있을 때마다 '국민의 안전, 안전'을 강조 하지만 각 부처와 현장들은 대통령의 안전 외침과는 전혀 딴판으로 움직이고 있다.
청와대도 참으로 답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