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은 이인호 이사장이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음에도 이사장직에 오른 것은 문제가 있으며, 본인이 이사장으로 있는데 감사를 진행하겠다는 '셀프감사' 역시 시청자를 우롱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공금유용 의혹'이 있음에도 이사장직에 오른 것에 대해 민언련은 "정권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며, "대표적 친일파였던 조부 이명세의 행각을 변명과 궤변으로 옹호해 온 극우 인사"다는 점이 "박근혜 정권의 친일사관과 최근 벌어지고 있는 근현대사 퇴행과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음은 성명 전문.
‘공금 유용’ 의혹과 친일 역사관으로 점철된 이인호 씨가 KBS 이사장에 연임됐다. 2일 열린 KBS 이사회는 야당 추천 이사들이 퇴장한 가운데 여당 추천 이사들만으로 이인호 씨를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연장자가 이사장을 맡는다는 관례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친목 도모를 위한 모임에서 연장자가 우대되는 것은 우리사회의 관행이며 미덕이다. 하지만 대표적 공영방송 KBS의 공적 책임과 경영의 관리, 감독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부여받은 KBS이사회의 장을 선출하는데, 나이 순서가 절대적 기준이 되고 있는 현실은 그 자체가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인호 씨는 그동안의 언행에서 이사의 자격에도 미치지 못하는 천박한 역사인식을 보여주었던 결함투성이 인사다. 우리는 지난 2일 발표한 논평에서 최근 불거진 이인호 씨의 ‘공금 유용’ 의혹에 대해 “이인호 이사장과 KBS는 이번 의혹을 어물쩍 넘기려 해서는 안 되며 분명하게 해명하고 만약 부끄러운 점이 있다면 책임지고 직을 놓고 물러나야 마땅하다”고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KBS 여당 추천 이사들은 사측의 해명만 듣고 구렁이 담 넘듯 이인호 씨를 이사장으로 선출한 것이다.
이인호 씨는 이사회에서 ‘셀프감사’를 요청하겠다며 시청자를 다시 한 번 우롱했다. 이사장은 이사회를 대표하고 이사회 업무를 총괄하며 회의를 소집하는 권한 등 평 이사와 달리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사장의 지위에서 감사를 받는 것과 평 이사의 신분으로 감사를 받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이인호 씨도 잘 알 것이다. 따라서 이인호 씨의 ‘셀프감사’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이사장의 지위에 오르기 전에 감사를 먼저 받는 것이 순서다. 공금을 사적 용도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감사 등 철저한 내부 조사 결과에 따라 이사장을 선출해도 늦지 않는다. 더군다나 ‘공금 유용’이 사실로 밝혀지는 날이면 이사장은 물론 이사 직에서도 사퇴해야 마땅한 사안이기 때문에 감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도 무엇이 그리 급한지 여당 이사들만 참석한 가운데 이사장 선출을 밀어붙였다.
이인호 씨가 ‘공금 유용’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사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데는 정권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작년 이인호 씨가 이사장으로 내정됐을 때부터 각계의 우려가 터져 나왔는데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동영상을 보고 “감명받았다”고 하는가 하면 대표적 친일파였던 조부 이명세의 행각을 변명과 궤변으로 옹호해 온 극우 인사였기 때문이다. 이런 면이 박근혜 정권의 친일사관과 최근 벌어지고 있는 근현대사 퇴행과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이인호 씨는 이사장으로 입성한 후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이인호 씨는 첫 번째로 참석한 이사회에서 자신이 공영방송 이사장 자리에 부적격이라는 주장에 대해 “일부 운동권 교육을 잘못 받았던 정치인이나 사학과 교수 및 언론인들의 잘못된 역사 인식 때문”이라고 일축하고, “KBS 이사들이 프로그램에 대한 논평이나 비판을 해선 안 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프로그램에까지 손을 뻗치겠다고 공언했다.
실제 올 2월 7일에 방영된 KBS 광복 70주년 기획 <뿌리깊은 미래> 1부에 대해 이인호 씨는 이사회에서 “이 다큐를 본 사람들로부터 ‘내용이 편향됐다’는 항의 전화를 사방에서 받았다”며 “이런 식이면 KBS 수신료를 어떻게 인상하겠느냐는 항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이인호 씨는 6월 24일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의 일본 망명 요청설’ 관련 보도를 문제 삼으며 7월 6일 긴급 이사회를 소집하기도 했다. 보도를 가지고 이사회를 소집한다는 건 전례가 없던 일로 이인호 씨는 “밖에서 시끄럽게 KBS 성토대회가 열린다고 하니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댔다. 오비이락일까. 6일 이사회 이후 위 보도를 담당했던 국·부장 전원이 좌천됐다.
이렇듯 ‘공금 유용’ 의혹과 천박한 친일 역사관을 가진 이인호 씨로는 KBS의 앞날을 논하기는커녕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이인호 씨가 특정 이념집단의 대변인을 자임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보도와 프로그램에 간섭한다면, KBS의 독립성은 물론, KBS의 신뢰도 붕괴는 시간문제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인호 씨는 지금 즉시 이사장의 지위에서 내려와 자숙하면서 감사 결과를 기다려라. 나아가 이인호 씨가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가 낙마한다면 “이 나라 떠날 때라고 느낄 것”이라고 말 했던바 굳이 이사장 직에 목을 맬 이유 또한 없을 것이다.
2015년 9월 4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