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금융안정 차원에서 긴급 금융검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부실기업 문제로 인한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사람들이 가계부채가 위험하다고 하지만 작금의 기업부채 문제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며 “한계기업들의 부실과 이로 인한 부실 채권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수면 위로 부각된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해 조선, 철강, 전자 등 수출 중심의 상당수 기업이 자금난을 겪고 있고, 이 가운데는 대기업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부진 등으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한계기업들의 자금사정이 더욱 악화됐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도 이미 이 같은 분위기가 반영돼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졌고, 이것이 다시 기업의 자금난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신용등급 'A' 회사가 발행한 회사채 가운데 37.1%가 팔리지 않았다. 작년 같은 기간만 해도 A등급 회사채가 말리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그만큼 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중국의 경기 둔화, 미국의 금리인상이 현실화되면 기업들의 자금난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다. 부실기업 문제가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정부와 한국은행이 1조원의 자금을 회사채 시장에 지원한 것도 기업들의 자금난에 숨통을 터주고,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금감원 등 금융당국은 긴장하며 자금시장 흐름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런 가은데 금융안정의 책임이 있는 한국은행은 부실기업 문제가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수 있다고 보고 대형은행들을 상대로 긴급 금융검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한은은 이번 검사에서 한계기업과 취약기업의 상환능력, 지급결제 안정성 등을 파악해 금융시스템상의 위험요인을 분석할 예정이다.
한은관계자는 "최근 상황은 금융시스템 리스크 측면에서 '주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며 "유의해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부실기업 문제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세계 경기 둔화에다 중국, 일본과의 경쟁 격화로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성장성과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재무재표를 공시하는 상장기업 1,536개를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지난해 이들 기업의 매출액은 1.5%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1%)보다도 1.4%포인트나 더 낮은 것이다.
특히 대기업은 1.6%나 감소해 중소기업(3.8%)보다도 훨씬 부진했다.
대기업의 매출 증가률은 2010년 17%에서 매년 큰 폭으로 떨어져 지난해에는 2009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다.
매출액이 특히 많이 감소한 업종은 해운, 전자, 석유, 조선, 화학으로, 현재 경영난을 겪고 있거나,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조선업계가 가장 심각하다.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3는 연말까지 3천여명을 감원하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전자업계는 LG 전자의 경우 명예퇴직설이 나돌고 있고, 삼성전자는 TV생산 설비를 감축하기로 했다.
석유화학업계도 심각하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이 3일 업체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며 대규모 합병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그만큼 상황이 좋지않다는 반증이다.
문제는 이들 업종 대부분 거대 자본이 필요한 장치 산업들로 소수 대기업의 독과점 체제가 구축돼 있다는 점이다. 다수의 대기업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의미다.
수많은 협력업체를 거느린 대기업의 부실화는 연쇄 부도로 이어지며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금융시스템상의 리스크를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중국의 경기 둔화, 미국 금리인상 등과 맞물려 부실기업 문제가 갈수록 더 부각될 가능성이 큰 만큼 경제주체들이 슬기롭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러나 금융시스템을 위협할 수준까지 사태가 악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