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한 이번 전승절은 중국의 대국굴기와 일본의 군사대국화,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 러시아의 아시아 중시 정책 등이 서로 충돌하며 새 질서를 모색하는 치열한 각축전이 될 전망이다.
그 한 가운데 놓인 우리로선 북핵 해법 도출과 미·중간의 균형외교 추구, 한중일 3국관계 복원이라는 세 마리 토끼 가운데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이번 외교전의 성패에 따라 한반도 평화통일과 동북아 안정을 주도할 수 있는 '영리한 돌고래'로서의 역량을 시험받게 된다.
◇ 중국의 '대북 지렛대' 강화될까…북핵이 제1과제
청와대는 “북핵문제 해결 등 한반도 평화와 안정, 평화통일 촉진에 대한 중국의 기여와 역할을 기대하는 측면”을 강조했다.
물론 제1교역 상대국인 중국과의 경제적 측면도 크게 고려됐다.
하지만 이는 미국에 대한 충분한 설득논리가 될 수 없고 오히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의 기회주의적 이중성만 부각될 수 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이번 방중을 통해 북핵 해결을 위한 중국의 보다 적극적 협력을 이끌어내 동북아 국제질서의 선순환을 꾀하는 역할을 요구받게 됐다.
이와 관련해 중국이 최근 북한의 지뢰도발 이후 8.25 남북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는 꽤 고무적이다.
황준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한 학술회의에서 "중국 정부는 과거의 양비론적 입장에서 벗어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공식 반응을 내놨다"고 평가했다.
북중관계는 북한이 이번에 전승절 사절로 권력서열 6위인 최룡해 당 비서를 보낸 것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전례없이 냉각돼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대북한 지렛대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북한의 10월 장거리 로켓 도발을 억지, 완화할 수 있을 것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북핵 해법을 현실적으로 6자회담의 틀에서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이 여전히 큰 입장 차를 보이는 것은 풀기 힘든 숙제다.
미국은 6자회담의 재개 조건으로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 중단 등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중국은 조건 없는 대화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방중 기간에 북핵 해법을 도출해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는 셈이다.
◇ 동북아 외교 주도권 잡을까…'균형외교' 위기 또는 기회
때문에 북핵 해법이란 측면에선 10월 워싱턴에서의 한미정상회담이 사실상의 본 게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미·중의 간극을 얼마나 좁힐 수 있느냐에 박근혜 외교력이 판가름 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산정책연구원 최강 부원장은 “전승절 참석은 상징적 의미가 큰 것이고 사실은 방중 이후의 미국 방문을 어떤 식으로 끌고 갈 것인가가 굉장히 고민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미·중 간의 균형잡기 측면에서도 방중 이후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지난 31일(현지시간) 비서구・아시아국가 외교장관으로는 유일하게 북극외교장관회의(GLACIER)에 참석한 것도 이런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이 회의는 미국이 처음 의장국을 맡게 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물론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참석했다.
정부는 또, 잠시 수면 아래 들어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서도 머지않아 미·중 사이의 힘겨운 줄타기를 해야 한다.
균형외교 측면에선 전승절 참석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기회이자 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시진핑의 선물 있을까…외화내빈 경계해야
급기야 산케이신문은 박 대통령을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된 명성왕후에 빗대는 망발로 한일관계를 더욱 꼬이게 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박 대통령은 이번 전승절 외교 국면에 한중일 3국간 ‘역사 화해’의 물꼬를 트는 역할이 더욱 요구된다.
이를 위해 박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한중일 정상회담의 연내 개최를 요구하고 중국 측도 ‘선물’ 차원에서 성의있는 반응을 할 가능성이 예상된다.
다만 중국이 박 대통령에 대한 최상급의 예우와 달리 실리적 차원에선 별로 기대할 게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천안문 성루에 오른' 등의 외교적 수사는 화려하지만, 사실 전승절 참석국 정상들의 면면으로 볼 때 당연한 의전으로 풀이된다.
전승절 외교전에 대한 섣부른 낙관을 경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