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1. 국민연금, 재벌개혁의 덫인가? 2. 국민연금은 거대한 사기인가? 3. ‘연못 속의 고래’가 된 국민연금의 운명은? |
지난 2005년 4월 국회 대정부 질문 때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가 민주노동당 현애자의원이 국민연금제도 개선방안에 대해 묻자 답변한 내용이다.
"노태우 정권 때 국민연금을 만들면서 3% 보험료를 내면 70% 급여를 주겠다고 국민들에게 거짓말 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일국의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많은 국민이 20년 가까이 보험료를 내면서 참여하고 있는 제도에 대해 사기를 쳐서 만든 제도라고 한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비록 국민연금제도 개혁의 시급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총리가 공식석상에서 사기라고 규정한 것을 일반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한국납세자연맹과 같은 단체에서는 이후 국민연금 문제가 불거지자 당장 국민연금 폐지운동을 전개하며 서명작업에 나서기까지 했다.
이제는 국민연금제도가 사기라는 말은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은 사실은 거대한 사기다. 테크니컬하게 안되는 것을 되게 하는 거다. 국민연금을 내는 것보다 많이 가져가도록 하려면 인구가 계속 늘어야 하는데 세계적으로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거니까 사기”라고 말했다.
현재 국민연금에 2천만명이 넘는 국민이 가입해 있고 이들 대부분이 노후에 받을 국민연금에 기초해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그리고 있는 현실에서 국민연금제도가 사기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온 국민이 속은 것은 차치하고라도 바로 잡지 않으면 국민의 안정적인 노후생활도 송두리째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가입돼 있는 국민연금제도가 정말 사기일까. .
국민연금제도는 분명히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많다.
무엇보다 장기재정추계상으로 보면 국민연금기금은 마치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과 같다.
현재 5백조원대인 국민연금기금은 2043년에 최대 2천 5백조원대까지 증가했다가 추락하기 시작해 2060년에는 소진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이야 짜릿한 경험이지만 국민연금기금이 타는 것은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노후를 불안하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기금이 2천 5백조대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불어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것이 이후 20년도 안돼 고갈된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빚어지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국민연금제도가 처음부터 보험료를 적게 내고 많이 받아가도록 설계돼 있는 가운데 저출산 고령화라는 파도가 들이닥친 결과이다.
◇자신이 낸 보험료보다 1.4배에서 2.9배 더 받아가
국민연금제도는 이해찬 전총리의 말대로 3%(*보험료율)의 보험료를 내고 70%(**소득대체율)를 받아가는 것으로 처음부터 설계됐는데 이것은 누가 들어도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구조임에 틀림없다.
(*보험료율 : 가입자 월급(월소득)에서 보험료로 떼가는 비율.
*소득대체율 : 보험료를 10년 이상 납부한 경우 가입자의 생애평균소득과 비교해 받 게 되는 연금의 비율)
하지만 이것을 거짓말로 몰아부칠 수 없는 것은 제도가 설계된 대로 시행됐다는 점이다.
이 제도는 이후 두 차례 개혁을 거치면서 보험료율은 9%로 올랐고, 소득대체율은 2028년까지 40%로 내리는 것으로 하향조정된 가운데 시행되고 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 조정됐지만 지난해 국민연금에 새로 가입한 사람이 20년간 보험료를 내면 소득계층별로 자신이 낸 보험료의 1.4배에서 2.9배를 노후에 연금으로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
어떤 민간 연금 상품도 이 정도의 수익성을 보여주는 상품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국민연금의 구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기금이 계속 줄어들어 언젠가는 고갈되겠지만, 경제가 계속 성장하고 보험료를 낼 수 있는 인구가 줄지 않고 유지되는 한 그 속도는 상당히 더디게 진행될 것이다.
젊은 세대가 열심히 보험료를 내서 쌓은 적립기금으로 노후세대에게 지급할 연금을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60년 이후 근로자 1.2명이 노인 1명 부양
합계출산율은 한명의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수를 뜻하는데,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005년 1.08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한 이후 2011년 1.24명, 2012년 1.3명, 2013년 1.19명, 지난해 1.21명으로, 1.2명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는 인구 유지에 필요한 출생아수인 2.1명에는 한참 못미치는 것으로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인구감소가 불가피하다.
실제로 인구추계를 보면 우리나라 인구는 2030년 5천 2백만명을 정점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기대수명 증가로 인구고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에 14%(고령사회 기준), 2026년에는 20%(초고령사회 기준), 2060년에는 4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자연 이들을 부양해야 할 근로세대의 부담은 크게 늘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저출산으로 이들 근로세대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데 있다.
실제로 부양능력이 있는 인구와 노인인구의 비율을 나타내는 노년부양비(65세 이상인구/15~64세 인구)는 지난 2010년 15.2%에 머물렀지만, 2060년에는 80.6% 수준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금까지는 근로자 6명이 노인 1명을 먹여 살렸다면 2060년 이후에는 근로자 1명이 노인을 거의 1명 먹여 살려야 하는 구조가 된다는 의미이다.
9%(보험료율)를 내고 40%(소득대체율)를 받는 현재의 국민연금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들어와서 쌓이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훨씬 많게 돼 2천 5백조에 이르는 기금이 20년도 안돼 고갈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기’라기 보다 “처음 설계 잘못돼”
이런 점으로 볼 때 국민연금제도는 사기라기 보다는 처음부터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수익비를 높여준데다 인구추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이 오늘의 문제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원종욱 보험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처음 국민연금제도를 시행하면서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많이 준다고 한 측면이 있겠지만 보험료를 적게 거둔 것이 고갈의 한 원인”이라며 “처음 설계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장이었던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노인수명이 늘고 인구가 줄어들어 이중으로 문제가 심각하다며 처음 국민연금제도를 설계할 때 이 점을 제대로 못 내다 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2060년 기금 고갈이 예상되고 있는 시점에서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책으로는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있지만, 이는 시장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노력은 기울여야겠지만 확실한 대책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국민연금은 세대간 “폭탄돌리기”
수익률 제고를 논외로 하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으로는 보험료를 더 올리거나 연금급여를 적게 가져가는 것, 아니면 연금재정 적자를 세금으로 메워주는 것이 있다.
국민연금제도는 세대간 재분배의 기능이 있어, 현 세대가 부담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로 그 부담이 넘어가기 때문에 자칫하면 세대간 다툼의 소지가 크다.
보험료나 연금급여는 어느 시기에 올리고 줄이느냐에 따라 그 부담이나 손해가 현 세대로 떨어질 수도 있고 다음 세대로 넘어갈 수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이태규 연구위원은 이 점에서 “국민연금은 정말 폭탄돌리기”라고 말했다.
현 세대가 안고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로 폭탄을 건네는 거나 다름 없다는 의미에서다
정부나 시민단체, 민간전문가들도 이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60년은 아직 먼 미래기 때문에 그 사이에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하고 있다.
하지만 해결을 늦출수록 다음 세대의 부담이 더 커진다는 차원에서 사회적인 대타협을 통해 해결방안을 찾는 것은 시급한 일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속가능한 국민연금구조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현재는 대화구조가 안돼 있다”며 “정치원로나 연금학자들이 중심이 돼서 논의하고 그 안을 국회에 보고하는 미국식의 논의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내 것을 고집하기 보다는 먼저 내놓고 세대간의 상생을 도모하겠다는 성숙된 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