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 강자의 부조리를 비판해 온 힙합 문화가, 이 시대를 사는 여성과 같은 약자를 조롱하는 도구로 쓰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28일 방송된 쇼미더머니4 마지막 회에서는 산이-버벌진트 팀의 베이식과 지코-팔로알토 팀의 송민호가 단 한 명의 우승자를 가리기 위한 승부를 벌였다.
베이식은 1라운드 'I am the Man'을 통해 뛰어난 랩 실력과 남다른 팀워크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고, 2라운드 '좋은 날'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아 감성적인 무대를 펼쳤다.
송민호 역시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1라운드 'Okey Dokey'를 소화해냈고, 2라운드 'Victim+위하여'에서는 프로그램을 통해 맺은 인연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흥겹게 풀어내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결과는 베이식이 1, 2라운드 합산 총 3018만 원, 송민호가 15,60만 원의 공연비를 획득해 베이식이 영광의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 베이식은 방송을 통해 "믿겨지지 않는다. 너무 기쁘고, 도와준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라는 소감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쇼미더머니4에는 4강에 오른 베이식, 송민호, 이노베이터, 블랙넛을 제외하고도 막강한 실력과 개성을 갖춘 래퍼들이 대거 등장했다. 일찍이 베이식과의 명승부를 펼치며 우승 후보로 주목 받았던 릴보이는, 1차 경연 송민호와의 승부에서 단 5표 차이로 탈락했지만 래퍼로서의 실력과 능력을 대중 앞에서 증명했다.
마이크로닷은 카리스마 넘치는 파워풀한 랩과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블랙넛에게 마이크를 넘기며 탈락한 뒤에도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는 모습으로 '인성 갑(甲)'이라는 평을 얻었다. 예선부터 뛰어난 실력으로 주목 받았던 한해, 개성 넘치는 랩 스타일로 존재감을 인정받은 지구인 등 실력파 래퍼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재조명 받아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 인식 부재 혹은 부족…'권력'으로 전락한 '저항'
제작진은 "프로듀서들과 참가자 래퍼들이 피땀 흘려 준비한 무대를 보다 완벽하게 표현해 내기 위해 무대 연출에 각별히 신경 썼다"며 "시청자 여러분께도 래퍼들의 에너지와 현장의 열기가 그대로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전했다.
이러한 노력은 음원차트에서도 결실을 맺었다. 방송 직후 공개된 음원들은 매주 주요 음원차트의 상위권을 차지했다. 특히 인크레더블의 '오빠차'는 유쾌한 가사와 중독성 강한 후렴구로 큰 호응을 얻으며 주요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다. 지코-팔로알토 팀의 팀미션곡 '거북선', 송민호의 자전적인 가사와 태양의 피처링이 어우러진 준결승곡 '겁', 베이식에게 우승을 안겨준 결승곡 '좋은 날' 등 다양한 곡들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렇듯 쇼미더머니4의 빛이 밝았던 만큼 이면의 그림자 역시 짙었다.
송민호는 지난달 10일 방송에서 "MINO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가사가 들어간 랩을 했고, 제작진은 이를 여과 없이 방송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의 부재 혹은 부족 탓에 '저항'이 '권력'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송민호 씨의 랩 가사가 대한민국 여성에게 성적인 모욕감을 준 것은 물론,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소속 4000여 산부인과 의사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항의하기도 했다.
송민호 본인과 프로듀서, 제작진이 사과하면서 사건은 힘겹게 진화됐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품어야 할 저항 정신에 바탕을 둔 힙합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무한경쟁 조장 탓에 오히려 약자를 비하하는 데 동조했다는 비판으로부터는 쉽게 자유로워질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