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지부진한 포스코 수사 '질긴 연줄' 탓일까?

지지부진 전개되는 포스코 수사를 지켜보면 한숨만 나온다. 검찰이 그동안 20여개 협력업체를 압수수색하고 임원과 직원 등 20여명을 구속했지만 정작 포스코 비리의 장본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은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포스코를 퇴임한 한 임원으로부터 “(그가) 사적인 모임에 나올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는 얘기만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마도 정 전 회장 스스로 좌고우면 해봤지만 비리를 저지른 것이 없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2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배성로 전 동양종합건설 회장은 귀가하는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포스코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기가 비리를 저지른 일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럴까? 회사 돈을 몰래 빼돌렸거나, 뇌물을 받았거나, 뇌물을 건넨 것만이 ‘죄’라는 인식이 뇌 속에 입력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고정관념이야말로 그 사람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함정이다. ‘죄’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함의(含意)로 풀어서 체득해야만 이해하게 되고 조심하게 된다. ‘양심이나 도의에서 벗어난 행위’가 국어사전에 나오는 ‘죄’의 첫째 뜻풀이다. 둘째가 ‘법을 어기는 행위’, 셋째가 ‘잘못이나 허물로 인한 벌’이다.


안타깝게도 정 전 회장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 것인지 ‘양심’과 ‘도의’는 ‘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6개월 가까이 끌고 있는 포스코 비리수사의 파장으로 인한 기업 이미지 훼손과 직원들의 피로감, 제철소가 있는 포항·광양 지역의 경기 침체 등에 대해 어쩌면 그리도 몰염치할 수 있겠는가.

정 전 회장은 검찰 수사를 받기에 앞서, 자신의 방만 경영 때문에 불거진 포스코 수사의 본질을 깨닫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글로벌 기업 포스코의 수장을 지낸 사람다운 자세라고 본다. 양심과 도의적 책임만 놓고 보아도 결코 가볍지 않은 ‘죄’가 아닌가.

배 전 회장의 행보도 마찬가지다. 정준양호 시절 그의 기세는 삼척동자도 다 알만큼 대단했다. 정 전 회장이 포스코 사장으로 있던 2005년 친인척비리 혐의로 검찰이 가택수사를 나서려고 하자 배 전 회장이 나서서 검찰 쪽을 무마시킨 일로 두 사람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졌다는 소문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정 전 회장 뿐 아니라 유상부·이구택 회장과도 친분이 두터웠고, 이들 세 명의 포스코 회장 모두가 그에게 고급정보와 지역동향을 귀동냥했다는 것도, 포스코 간부들 사이에서는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배 전 회장은 자신은 죄가 없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앞서 짚어보았듯이 양심과 도의적인 것은 죄가 아니라는 잘못된 인식 탓일 것이다. 그가 포스코 최고 경영자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했던 이런저런 일들이 포스코라는 기업에게 혹은 포스코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었을 수도 있고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었을 수도 있다. 원성을 살 수도 있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포스코의 이미지에 흠집을 냈을 수도 있고, 최고경영자의 눈과 귀를 가렸을 수도 있다. 여우가 호랑이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는 ‘호가호위(狐假虎威)’와 다를 게 무언가. 그래도 자신의 잘못을 모르겠다면 할 말이 없지만.

검찰이 다음 주중 정 전 회장을 불러 조사를 하는 것으로 포스코 비리수사의 대미를 장식하려 한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때문에 ‘봐주기 위한 수사’, ‘형식적인 절차를 거치기 위한 수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충 마무리 지으려고 해도 윗선(?)에서 그냥 넘어가지 않으려고 할 경우의 수에 대비에, 검찰과 법원이 차선책을 세워야 할지 모른다는 가상도를 일각에서는 그리기도 한다.

어쨌거나 포스코 수사를 지켜보면서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대한민국의 기업들이 사법 입법 행정부와 은밀하게 맺어놓은 공생주의(共生主義)식 연줄은 끈끈하기도 하지만 다급해지면 거래 관계로 반전해 사태를 마무리 짓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똑똑한 기업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돈으로 꼬아놓은 질긴 연줄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믿었던 연줄이 끊어진 것을 알았을 때, 배신감을 견디지 못하고 막다른 길을 선택하는 기업인들을 종종 보았기 때문인가 보다.

그런데 말이다. 현재 진행 중인 포스코 비리수사에서는 ‘질긴 연줄’이 작동하는 낌새가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유별난 직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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