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서울구치소에서는 적지 않은 의원들과 당원들이 그가 수감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응원했다.
여성운동의 대모로서, 첫 여성 총리와 야당 대표를 맡는 등 정치적 무게감이 적지 않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전 총리는 "저는 결백하다. 그래서 당당하다. 울지 않겠다. 굴복하지 않겠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유유히 구치소로 들어섰다.
5년 간 법정 싸움 끝에 패한 그는 대법원의 판결에 저항하지는 않았지만, 결백을 주장하며 '사법 정의가 죽었다'고 개탄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간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의원들이 한 전 총리가 '억울하다'고 보고 있다. 유승희 최고위원은 "대법원의 보수화가 심각하다. 대법원의 저울이 이미 기울어졌다"며 대법원의 인적 구성 문제를 꼬집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대법원이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로 채워졌다는 것이다. 이는 일면 일리있는 지적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야당의 반발은 한 전 총리에 대한 수사가 정치적 동기를 띈 '기획수사'라는 의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난 2009년 12월 초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총리 시절 5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을 며칠 앞둔 2010년 4월 초 '별건수사'를 통해 제2의 금품 수수 의혹 사건을 터뜨렸다.
이 때문에 한 전 총리는 같은 해 6.2 서울시장 선거를 피의자 신분으로 치렀다. 결과는 0.6%포인트 차이의 석패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박지원, 김한길, 문희상, 신계륜 등 10여명의 중진급 의원들이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도 야당은 불공평하다고 보고 있다.
당내 신공안탄압 저지대책위를 따로 둔 것은 이런 기류에서다.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종걸 원내대표는 "정의가 승리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분노하고 함께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검찰이 선거를 앞두고 야당 의원들에 대해 무더기 수사를 한 것은 총선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농후하다.
총선을 앞두고 야당 의원들의 수사나 재판 내용이 '잊을만 하면' 언론보도를 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당의 대선 자금 관련 메모를 남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건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용두사미인 점을 보면 야당의 불만이 이해가는 측면이 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핵심 증인에서 피의자로 신분이 급변한 권은희 의원 사건은 법조계 안팎에서도 '원칙 없는' 검찰 수사로 지적되고 있다.
야당 의원들이 겉으로 대놓고 얘기는 하지 못하지만 "돈 문제면 여당이 우리보다 깨끗한가", "검찰이 여권을 수사하면 더 큰 게 나올 것"이라며 볼 멘 소리를 할만도 하다.
그렇지만 야당이 모든 사건을 '공안 탄압'으로 규정하는 건 국민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수사나 재판 중인 의원 중 일부는 청탁을 한 사실이나 금품을 받은 사실을 시인한 사람도 있다. 또 사건 내용으로 봤을때 개인 비리 성격이 강한 것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의원들을 '공안 탄압'이라는 방패 안에 두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그동안 야당을 버티게 하는 중요한 축의 하나는 '도덕적 우위'다. 물론 여야를 가리지 않고 불거진 부패·비리 사건으로 퇴색된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그런 경향은 남아있다.
그럼 현 상황에서 야당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이미 정치 환경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이 기정사실화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야당은 스스로 더욱 칼날 같은 '도덕적 잣대'로 무장할 수 밖에 없다.
운동장이 기울었는데 평지에서처럼 뛸 수는 없다.
혁신위원회를 통해 한때 회자된, 난해한 한자성어인 '육참골단'(肉斬骨斷·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는 뜻)이 아니면 야당은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자기 희생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혹여나 '억울한 사람'이 나오더라도 야당의 숙원인 총선·대선 승리를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야당은 필요이상(?)으로 더 반성하고, 더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것이 '기울어진 운동장 혹은 법정'에 대처하는 야당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최소한 운동장을 바로 세우기 전까지는.
그리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것도 궁극적으론 야당 몫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운동장을 탓해도 저절로 원상복구되지는 않는다. 억울하면 정권을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