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20일 불법 정치자금 9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전 국무총리인 새정치민주연합 한명숙 의원에 대해 대법관 8대 5의 의견으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한 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한만호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 원심의 유죄 판단은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관련 법률을 오해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상고를 기각했다.
이번 판결로 한 의원은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 8300여만 원의 형이 확정됐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앞서, 한 의원은 지난 2010년 7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불법 정치자금 9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번 판결은 기소된 지 5년만, 1심에서 무죄와 2심에서 유죄가 인정된 뒤 대법원이 2년 가까이 사건을 심리해온 결과다.
대법원은 한 전 대표가 발행한 1억 원권 수표를 한 의원의 동생이 사용한 점에 주목해 “한 의원의 동생이 잘 모르는 한 전 대표로부터 받았을 가능성이 없어 한 의원이 건넸다는 게 경험칙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또 한 의원이 한신건영 부도 뒤 받은 금액 가운데 2억 원을 돌려준 점과 한신건영 경리부장이 작성한 비자금 장부 등을 한 전 대표의 진술에 대한 정황증거로 받아들였다.
다만, 대법관 13명 가운데 대법관 5명(이인복, 이상훈, 김용덕 박보영, 김소영)은 반대의견을 냈다.
한 전 대표가 1심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는 이유 등으로 1차로 받은 3억여 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품수수 혐의에 대해선 원심을 파기해야 한다는 취지다.
◇한만호 “한 의원 누명 쓰고 있어”…1심 무죄
앞서 1심은 지난 2011년 11월 한 의원에게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한 전 대표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우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1심 재판 도중 “억울하게 빼앗긴 회사를 되찾을 욕심과 수사 초기에 검찰 제보자가 찾아와 협조하지 않으면 또 다른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암시적으로 겁박하고 돌아갔기 때문에 허위진술을 하게 된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어 “한 의원에게 어떤 정치자금도 제공한 사실이 없다. 비겁한 나로 인해 누명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그동안의 진술을 180도 뒤집었다.
검찰은 한신건영의 비밀장부(B장부), 채권회수목록, 한 전 대표가 감방에서 지인들과 나눈 접견대화 자료를 제시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전 대표가 한 의원에게 정치자금을 건네려고 전화를 해서 집을 방문하기로 약속한 시점이 2007년 3월인데, 한 전 대표의 휴대전화에 한 의원의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한 날짜가 그해 8월로 돼 있는 점도 진술과 반대되는 사실이었다.
재판부는 “한 전 대표의 검찰진술이 객관적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진술을 전면적으로 번복하기로 해 일관성도 없다”면서 “추가기소를 피하고 회사를 되찾겠다는 개인적인 이해관계도 있었던 것으로 보여 신빙성이 없다”고 무죄 판결 이유를 밝혔다.
또 금품 수수 장소에 대해서도 개방된 도로나 CCTV가 설치된 아파트에서 돈가방을 주고받았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한 의원 동생이 한 전 대표가 발행한 1억 원권 수표를 전세금으로 쓴 것에 대해서도 “이 수표를 한 의원이 받았다고 증명되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뒤집힌 항소심…“한만호 진술 번복했지만, 신빙성 있어”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6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지난 2013년 9월 한 의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 8300여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한 전 대표가 1심 법정에서 자신의 검찰 진술을 전면적으로 번복했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증거 자료 등에 비춰 그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먼저, 한만호가 발행한 1억 원권 수표를 한 의원의 동생이 사용한 점에 대해선 한 의원의 비서로부터 받았다는 한 의원 동생의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고 “한 의원이 받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한 전 대표가 한 의원에게 돈을 줬기 때문에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3억 원의 반환을 요구한 것이며, 설령 한 의원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검찰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근거로 보기 어렵다”면서 이같이 판결했다.
한 전 대표가 한 의원으로부터 2억 원을 돌려받고 추가로 3억 원을 요구한 점 등을 인정해 1심 판결과 달리 판단한 것이다.
이어 “한 전 대표가 검찰에서 진술하기 전에, 그 후 검찰에 제출되거나 검찰에서 조사한 객관적 자료들을 모두 가지고 있거나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아 이런 사실은 한만호의 진술 신빙성을 오히려 뒷받침하는 정황자료”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휴대전화 번호 입력 시점에 대해서도 “휴대전화 복구가 기술적으로 완전한 것이 아니다”고 봤고, 정치자금을 받은 장소로 한 의원의 집이 지목된 것과 관련해선 CCTV는 통상 보존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점 등을 바탕으로 의문점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 의원은 이번 사건과 별도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미화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뇌물수수)를 받아 재판에 넘겨졌지만, 그해 3월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