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손 들어준 저작권법…보호대상 아닌 '아이디어'는?

상영금지가처분 신청 기각…"추상적 인물·전형적 사건은 아이디어 영역"

영화 '암살' 스틸(사진=케이퍼필름 제공)
"소설과 시나리오 등에 등장하는 추상적 인물의 유형 혹은 전형적 사건이나 배경 등은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팩션(faction). 사실(fact)과 픽션(fiction)의 합성어다.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일대기에 상상력을 덧붙인 창작물을 일컫는다.

최근 10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암살'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팩션 사이의 유사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시 한 번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영화 암살이 자신의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를 표절했다며 소설가 최종림 씨가 낸 영화에 대한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해당 영화와 소설 사이에 유사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는 17일 "채권자 소설(코리안 메모리즈)과 채무자 영화(암살)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채무자 영화의 상영 등 행위가 채권자의 저작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앞서 소설가 최 씨는 지난 10일 여성 저격수가 등장하는 점 등을 이유로 소설과 영화가 유사하다며 암살의 제작사 ㈜케이퍼필름을 상대로 영화의 상영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냈다.

두 작품이 유사하지 않다는 법원의 판단 근거는 저작권 보호 대상의 범위에 있다. 저작권 보호 대상은 사람의 정신적 노력에 의해 얻어진 학문·예술에 관한 표현 '형식'에 있다.

표현의 '내용'에 해당하는 아이디어나 이론 등은 원칙적으로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원은 "두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는가를 판단할 때에도 창작적인 표현 형식에 해당하는 것만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며 "소설이나 시나리오 등에 등장하는 추상적인 인물의 유형 혹은 어떤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전형적으로 수반되는 사건이나 배경 등은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여성 저격수와 같은 인물 유형이나 임시정부에서 암살단을 조선으로 파견한다는 등의 추상적인 줄거리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두 작품 모두 여성독립운동가를 내세웠다는 유사성에 대해서도 "두 인물에 관한 구체적인 표현은 전혀 다르다"고 봤다. 작품 초반부 일회적으로 저격 임무에 투입되는 소설의 여주인공 황보린을, 극 전반에 걸쳐 직접 전투를 수행하며 암살 작전을 주도하는 영화의 안옥윤과 같은 전문 저격수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법원은 소설의 전체 줄거리에서 요인 암살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반면, 영화에서 암살은 등장인물들이 달성하거나 저지해야 할 최종 목표로서 극의 중심을 이루는 소재라고 봤다.

"주인공들이 임시정부에 의해 구성된 암살단의 일원으로 조선에 파견돼 요인 암살 임무에 종사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두 작품의 전체적인 줄거리나 인물 사이의 관계, 구성이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암살의 제작사 케이퍼필름 측은 18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이번 결정은 대법원의 기존 법리를 재차 확인한 사안으로, 저작권법상 지극히 타당한 결정"이라며 "이번 상영금지가처분 기각으로 나머지 손해배상청구 등도 당연히 기각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 일부 저작자들이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며 무리하게 소송을 제기하거나, 소송을 제기하기도 전에 과도한 언론플레이를 하며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근거 없는 저작권 침해 주장이나 창작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허위 사실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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