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멕시코와 석유를 맞바꾼다. 미국이 자국의 생산 석유를 외국에 내다 파는 것은 40년 만에 벌어지는 일이다. 미국은 1970년대에 1차오일 쇼크를 경험한 이후 석유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1975년 에너지보호법을 만들어 매장된 석유를 전략적으로 보호했다.
그동안 캐나다 석유회사들만 미국 석유를 사갈 수 있었는데 조건이 붙는다. 미국에서 사 간 석유는 정제해 휘발유, 디젤 등 제품을 만들어 미국에 반드시 되팔아야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한 내용을 보면 멕시코도 이번에 미국의 석유를 사가면서 미국에 되팔진 않더라도 타국에 수출하지 않고 멕시코 안에서만 소비해야 한다. 수출이면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만 하지만 멕시코와의 교환 맞바꾸기는 의회 승인이 필요 없다.
석유의 수출수입에서는 석유의 성분과 종류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석유는 원유의 비중에 따라 API 지수라는 게 있고 그 지수에 따라 경질유, 중(中)질유, 중(重)질유로 나뉜다. 정제해 석유제품을 생산하려면 이것들을 섞어서 사용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멕시코는 미국에 중질유를 보내고 미국은 멕시코에 경질유를 보내는 형식으로 교환하는 것. 멕시코는 자국산 중질유에다 미국산 경질유를 섞어 생산하면 생산비용을 줄이는 이점이 있다.
◇왜 팔지 않고 바꾸는가, 왜 수입은 계속되는가
미국이 캐나다에 이어 멕시코에 석유를 내주는 이유는 역시 수급조절로 보인다. 셰일 혁명 때문이다. 셰일은 미국 영토 내 지하 약 3천 미터 깊이에 있는 넓은 바위 (혈암, 이판암) 지질층이다. 여기에 가스와 석유가 들어 있는데 그동안 기술적 문제와 비용문제로 채굴하지 않다가 최근 뽑아내기 시작했다. 기술이 발전하며 셰일가스와 석유의 생산량이 급증하고 있어 미국이 수급조절을 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그럼에도 미국이 계속해 외국에서 석유를 수입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미국 입장에서 손익을 따져보면 외국의 질 좋은 석유를 비교적 저렴하게 들여 올 수 있어 굳이 국내산으로 충당하려 애쓸 일은 아니다. 미국의 석유소비가 워낙 막대해 자국 석유로 충당하다간 매장량이 오래 견디지 못한다. 국내 매장량을 비축해 놓고 수입해 쓰는 것이 경제적이고 전략적이다
미국이 자국산 셰일 석유·가스를 해외로 수출한다고 해도 이익 폭은 크지 않다. 역시 자국산과 수입산을 적당히 섞어 쓰는 게 낫다. 미국 달러화의 가치가 중동 화폐보다 월등히 높으니 가능한 일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미국이 40년 동안 석유를 수출은 전혀 않고 모자라는 걸 수입해 썼기 때문에 석유 정제 산업이 수입석유에 맞춰 구조화 되어 있다는 점이다. 석유의 주성분은 탄화수소인데 탄화수소는 파라핀 계열이 있고 나프틴 계열이 있다. 당연히 정제과정에서 기술과 설비도 다르다. 같은 미국 석유라도 펜실베니아 원유는 파라핀계, 캘리포니아 원유는 나프틴계로 알려져 있다. 수십 년 간 이에 맞춰 설비 투자가 이뤄져 있다. 그런 점에서 수입수출 구조의 큰 변화는 쉽지 않다.
어쨌거나 미국은 셰일 가스와 석유를 대량생산하고 이제 수지타산과 전략까지 고려하며 수출을 시작하는 단계에 와 있다. 미국의 석유 생산과 수출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이대로 계속 늘어난다면 미국의 무역수지는 크게 개선되어 갈 것이고 미국의 재정도 나아질 것이다.
이는 미국의 경제 활황을 뒷받침 하고 미국 내수경제가 활기를 띠면서 유동성을 늘리게 된다. 미국 금리도 유동성을 조절하기 위해 오를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달러화 강세로 이어질 것이고 지구촌 곳곳의 자본이 미국으로 몰리는 수순을 밟게 될 개연성이 크다. 또 현재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유가의 결정도 미국의 입김이 강해질 공산이 크다. 미국 석유의 수출이 가져 오는 나비효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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