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두 사람이 이끄는 한국 롯데그룹의 앞날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미 '막장드라마'식 경영권 다툼과 '일본기업' 이미지로 그룹 전체가 심한 내상을 입은데다, 한국 롯데그룹에 대한 '본사' 인식이 강한 일본 롯데그룹과의 관계 설정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당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한국 사회에 빠르게 확산되는 '반(反) 롯데' 정서다.
지난달 말 이후 거의 한 달 가까이 재벌 롯데일가 형제·부자간 민망한 '경영권 다툼' 소식이 이어지자 대다수 국민은 인터넷 댓글이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짜증난다", "한심하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롯데그룹이 개선안을 내놓아도 네티즌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대목은 '일본 기업' 논란이다.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을 통해 일본 롯데가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구조가 다시 한번 부각됐다. 여기에 신격호 총괄회장-신동주 전 부회장 사이의 일본어 대화, 어눌한데다 억양까지 일본식인 신동빈 회장의 한국어 실력이 TV를 통해 생생하게 비쳐지면서 '일본 기업' 이미지는 씻기 어려운 상황까지 갔다.
지난 11일 신동빈 회장의 대국민 사과 직후 프로야구 롯데 구단의 연고지인 부산에서조차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등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나쁜 롯데 개혁 시민운동본부'를 출범시켜 '롯데 반대운동'에 돌입했다. 우리 사회에서 '반 롯데' 감정이 얼마나 빠르게 퍼지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는 단적인 사례다.
이들은 출범식에서 "그동안 롯데 그룹은 1988년 서면 롯데호텔 부지를 사들이면서 외국인투자촉진법을 적용받아 취득세와 등록세 191억원을 면제받은 것을 비롯해 현지 법인화 미전환, 부산롯데월드 착공 지연, 대선주조 먹튀 매각, 미흡한 지역사회 공헌 등 문제를 드러냈다"며 "롯데 관련 백화점·마트·패스트푸드점 안가기, 롯데 야구 안보기 운동 등을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임시주총을 통해 한국·일본 롯데의 지주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에 대한 신동빈 회장의 장악력이 드러났다고 하지만, 임직원 차원에서는 여전히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가 '전혀 다른 회사'라는 점도 롯데 내부의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 준비에 관여한 한국 롯데 관계자는 18일 "지금까지 수 십년동안 거의 양국 롯데의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공동 작업이 쉽지 않고 정보 공유조차 잘 이뤄지지 않았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일례로 신동빈 회장을 보좌하는 핵심 조직 롯데그룹 정책본부의 '실세'인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조차 주총 전날인 16일 밤늦게까지 정확한 주총 장소와 시각을 일본으로부터 연락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빈 회장이 한일 롯데의 '원톱'이라는 사실이 무색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오랜 기간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체제로, 한국 롯데와는 독립적으로 경영해온 일본 롯데그룹이 신동빈 회장에게 얼마나 '원톱' 위상을 부여할 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여전히 한국 롯데 계열사들의 지분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신동빈 회장으로서는 껄끄러운 부분이다. 계열사 경영에 있어 사사건건 신동빈 회장의 '발목'을 잡을 소지가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호텔롯데와 함께 한국 롯데의 핵심축인 롯데쇼핑만 보더라도 신동빈 회장의 지분율은 13.46%, 신동주 전 부회장의 지분율은 13.45%로 불과 0.01%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밖에 올해 초 기준 공시에 드러난 두 형제의 지분율은 ▲ 롯데제과 신동빈 5.34%-신동주 3.92% ▲ 롯데칠성 신동빈 5.71%-신동주 2.83% ▲ 롯데푸드 신동빈 1.96%-신동주 1.96% ▲ 롯데상사 신동빈 8.4%-신동주 8.03% ▲ 롯데건설 신동빈 0.59%-신동주 0.37% 등으로 비슷하다.
신격호(94) 총괄회장과 첫째 부인 사이의 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롯데쇼핑·롯데칠성·롯데푸드·롯데제과 등 1∼2% 지분), 셋째 부인 슬하의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롯데쇼핑·롯데삼강·코리아세븐 등 1% 안팎 지분) 등이 신동주 전 부회장 편에 설 경우, 전체 롯데그룹 경영권은 아니더라도 각 계열사의 중요 사안을 처리할 때 신동빈 회장의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