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회장·증권사 임원까지 나선 수십억대 주식사기극

자신의 회사 주가 조작을 지시한 기업체 회장과 이에 가담한 현직 증권사 간부가 검찰에 붙잡혔다.

서울 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김형준 부장검사)은 16일, 자본시장법 위반(시세조종) 혐의로 A사 유모(56) 회장 등 4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또 B증권사 현직 상무인 신모(49)씨 역시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방송통신 회사인 A사를 운영하던 유 회장은 온천 및 레저시설에 투자하다 200억 원이 넘는 금융권 부채를 지게 됐고 회사 역시 2011년부터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자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유 회장은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A사 주가를 일부러 높인 뒤 차명 보유 주식을 높은 가격에 매도해 시세 차익을 거두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충북지역의 유선방송을 운영하는 A사는 코스닥에서 일명 'UN 반기문 사무총장 테마주'로 꼽혀 자주 등락을 거듭했기 때문에 유 회장 측은 쉽게 단속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유 회장은 재산관리인 역할을 해온 박모(54)씨에게 주가 조작을 지시했고, 다시 박씨는 주가조작 전문가인 양모(44)씨와 김모(48)씨에게 현금 7억 5000만원과 시가 6억여원 어치의 C사 주식 60만주를 건네고 일을 맡겼다.

양씨 등은 평소 알고 지내던 다른 주가조작 전문가들을 끌어모으는 한편, 박씨에게 받은 C사 주식을 담보로 삼아 사채업자들로부터 빌린 12억여원을 더해 약 20억원을 주가 조작 자금으로 마련했다.

양씨 등이 1300여 차례에 걸쳐 시세 조종 주문을 한 결과 2011년 12월 주당 964원이었던 A사 주가는 4개월여만에 주당 3475원으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A사 주가가 뛰어올라도 일반적인 방법으로 주식을 거래했다가는 주가가 다시 주저앉을 수 있기 때문에 유 회장 측은 현직 증권사 간부를 포섭하는 '묘수'까지 동원했다.

박씨는 2012년 2월 브로커를 통해 B증권사의 영업본부장을 맡고 있던 신 상무를 찾아가 유 회장의 차명 주식 중 30만 주를 '블록딜' 해달라고 청탁하고 쇼핑백에 담아둔 1억원을 건넸다.

'블록딜'이란 대량의 주식을 가진 매도자와 이를 살 수 있는 매수자 간에 거래를 체결하도록 돕는 것으로, 시장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기관이나 외국인 등을 대상으로 거래소 시장 직전이나 마감 직후의 시간 외 매매를 통해 거래하는 제도를 말한다.

제안을 받아들인 신 상무는 자신이 직접 관리하는 증권사의 계좌는 물론 업무상 관리하던 자산운용사의 간접투자 자금까지 A사 주식 매수에 사용했다.

이런 방식으로 증권사가 앞장서 A사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이자 정보를 입수한 일반투자자들마저 A사 주식을 상대로 추격 매수에 나서는 바람에, 유 회장 측은 주식을 팔아치울수록 오히려 A사 주가가 더 오르는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거둘 수 있었다.

불과 4개월 만에 이들 일당은 총 32억 8000여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겼고, 특히 유 회장은 차명주식 364만 주를 처분해 21억여원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이들의 주가 조작 행각은 지난해 7월 금융위원회에 고발되면서 검찰 수사 끝에 꼬리가 잡혔다.

검찰 관계자는 "대주주가 직접 보유한 주식이 아닌 차명 주식을 팔고, 이 과정에 증권사 임원까지 끌어들였다"며 "기관 투자자가 주가 조작 등 금융가 비리에 연루된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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