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담화가 사죄와 반성의 진정성이 크게 떨어지고 오히려 과거사를 미화하기까지 한다는 국내외의 비판여론을 감안하면 다소 의외의 결정이다.
정부가 “역대 내각 담화의 역사인식을 확실하게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8월10일 외교부 대변인 성명)하는 것을 최소한의 충족 요건으로 삼아온 것과도 맞지 않다.
박 대통령은 15일 제70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역사의 대한 인식은 가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살아있는 산증인들의 증언으로 살아있는 것”이라며 아베 담화를 우회 비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준 점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한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밝힌 점을 주목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앞으로 일본 정부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공언을 일관되고 성의 있는 행동으로 뒷받침하여, 이웃나라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특히,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조속히 합당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는 아베 내각이 앞으로 구체적 실천을 통해 올바른 역사인식 계승의 진정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일종의 ‘조건부 수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앞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이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란 아베 담화의 내용을 강조했다.
이에 윤 장관은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해 일본 측의 추가적인 노력을 전제로 한 긍정적 답신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대일 과거사 문제에 관한 한 강경한 ‘원칙외교’를 고수해온 원칙을 스스로 깬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아베 담화에서 ‘역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한 부분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정작 아베 총리는 역대 내각의 입장에 대해 간접화법으로 언급했을 뿐이다.
무라야마나 고이즈미 담화처럼 자신의 목소리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현하지 않았던 것이다.
역사인식에 대한 향후 입장 불변이란 약속이 그나마 긍정적 부분이지만, 아베 담화의 문맥이 매우 교묘하게 짜여있다는 점에서 지나친 의미 부여는 곤란하다.
더군다나 아베 총리는 또 박 대통령이 이날 경축사에서 밝힌 것처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한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라고 말한 적도 없다.
전날 아베 담화에는 ‘위안부’라는 문구 자체가 아예 없었다.
이런 점에 비춰 박 대통령이 아베 담화를 부득불 수용하게 된 배경에는 한미일 삼각공조를 둘러싼 현실적 요인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미국 백악관은 14일(현지시간) 네드 프라이스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 성명을 통해 아베 담화에 대한 환영 입장을 나타냈다.
성명은 “지난 70년간 일본은 평화와 민주주의, 법치에 대한 변함없는 약속을 보여줬고 이런 전력은 모든 국가의 모델이 되고 있다”고 추켜세웠다.
비록 중국 정부는 물론 주요 해외 언론들도 아베 담화를 일제히 비판했지만 유일 동맹국인 미국과 다른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외교부는 아베 담화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골몰했지만 70주년 광복절 오전까지도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