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4일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의 도입부를 일본의 근대화 성공과 열강 대열에 합류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담화는 “100년도 더 전에 세계에는 서구를 중심으로 한 여러 나라들의 광대한 식민지가 확산되고 있었다”며 “그 위기감이 일본에게 근대화의 원동력이 된 것은 틀림없다”고 밝혔다.
그 결과로서 아시아 최초의 입헌정치와 서구열강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켜냈다는 것이다.
담화는 이어 “러일전쟁은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을 고무시켰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아시아 최초의 근대국가로 발전했고 아시아를 대표해 서구 열강과 맞섰다고 주장하려는 의도로 짐작된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메이지 유신부터 1904년 러일전쟁에 이르는 동안 조선에 대한 침략과 강압적 병탄 시도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었다.
일본은 이 과정에서 한 나라의 왕비(명성황후)를 낭인들을 시켜 시해하는 전대미문의 만행을 자행한 나라다.
특히 러일전쟁은 조선과 만주의 지배권을 놓고 두 열강이 충돌한 결과일 뿐이지 아시아나 아프리카인들의 운명과는 무관하다.
담화는 또 일본이 만주 침략과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게 된 것은 잘못으로 인정하고 반성하면서도 나름대로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음을 은연중에 강변했다.
담화는 “(1차대전 종전 후) 일본도 (국제적 평화운동) 보조를 맞추기 위한 준비를 했다”면서 “그러나 대공황이 일어나 구미 국가들이 식민지 경제를 포함한 경제 블록화를 진행하면서 일본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 와중에 일본은 고립감이 심해졌고 외교적, 경제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힘으로 해결하려 했다”고 서술했다.
이 같은 인식은 전후 50년 무라야마 담화나 전후 60년 고이즈미 담화 등에선 전혀 없었던 것이다.
무라야마 담화는 시작과 함께 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나타냈고, 전후 폐허 위에 이룬 번영과 평화를 잠시 거론하긴 했지만 이는 세계 각국의 지원 덕분이라고 금세 공을 돌렸다.
아베 담화는 전후 70년간 일본의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에 대해서도 자화자찬을 빼놓지 않았다.
예컨대 20세기에 전쟁 때문에 많은 여성들의 존엄과 명예가 깊이 상처받은 과거를 가슴에 새기겠다면서 21세기에는 여성 인권이 피해보는 일이 없도록 국제사회를 선도해왔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고노 담화에서 명시한 일본군 위안부는 쏙 빼놓았고 그런 표현이나 문구조차 없었다.
과거의 치부는 최소한으로 드러내면서 긍정적 측면은 최대화하는 고도의 전략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식민지배로부터 영원히 결별한다고 하면서도 주어가 없는 제3자적인 유체이탈 화법을 쓰거나, 식민지배는 미국, 영국, 프랑스도 다 했다는 식의 전형적인 역사수정주의 논리”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