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태동한 글로벌 기업들…7~80년대 하나둘 떠나

[광복 70년 부산기업 70년 ②] 해방과 한국전쟁 격동기 부산은 삼성, LG 등 대기업 태동지

부산CBS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역 경제를 튼튼히 지탱해 온 장수기업과 부산을 모태로 성장한 글로벌 기업을 되돌아보는 기획보도를 2차례 마련했다. 오늘은 두번째로, 부산에서 태동해 지금은 세계시장을 누비는 글로벌 기업들의 역사를 되짚어본다.[편집자주]

1960년대 부산진구 서면교차로 모습 (부산진구청 구정자료 발췌)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난지 1년여가 지난 1947년 1월, 부산 서구 서대신동의 한 주택가에 작은 공장이 문을 열었다.

주택 마당에서 여성용 화장품인 '동동구리무'를 생산한 이 영세한 공장은 훗날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LG그룹의 모태 '락희화학(럭키화학)'이다.

1958년 10월 부산진구 연지동에서 문을 연 금성사는 국산 라디오를 처음 개발한 우리나라 최초의 전자 공업 회사로,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세계적 가전업체인 LG전자로 변모했다.

1953년 8월 부산진구 전포동에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설탕공장 '제일제당'은 국내 71개 계열사를 거느린 CJ그룹의 모기업이며, 국내 1위 재벌사인 삼성그룹의 2호 기업이자 최초의 제조업체다.

삼성그룹의 효시는 대구에서 창업한 삼성물산(옛 삼성상회)이지만, 삼성물산이 전장에서 모은 탄피를 수출한 뒤 생필품을 수입하는 무역업으로 초기자본을 축적하는 역할에 그친 반면, 제일제당은 종합식품회사로의 성장과 전자· 금융· 중공업 진출 등으로 삼성그룹의 초석을 다진 실질적인 모태기업으로 꼽힌다.


옛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신진자동차는 1955년 2월 부산진구 전포동에서 출범한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회사였고, 26개 계열사를 거느린 대상그룹 역시 1956년 동래구에서 문을 연 '미원'(조미료) 제조업체 '동아화성공업'이 그 출발점이다.

이 밖에 넥센타이어의 전신 흥아타이어, 주식회사 태광, 경남모직 등 부산에서 태동해 국내외로 뻗어간 기업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부산발전연구원 김형균 부산학연구센터장은 "부산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계기로 전국에서 사람이 모여드는 '용광로' 같은 도시였고, 그 결과 자연스럽게 기업가와 창업가에게 기회의 땅이 됐다"며 이같은 배경을 설명했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명예회장은 한국전쟁 피란시절 부산에서 토목사업을 영위하며 지역과 인연을 맺었고, 이때 6남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동구 범일동에서 출생하기도 했다.

1952년 12월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부산 유엔군 묘지 방문 당시, 엄동설한에 푸른 잔디를 깔아달라는 미군의 요청에 낙동강변 청보리를 옮겨심은 일화는 이후 미 8군 공사를 거의 독점하다시피하게 한 계기로 작용하며 현대그룹 성장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LG그룹 모태인 락희공업사 모습, 지금은 LG청소년과학관이 자리잡고 있다. (부산진구청 구정자료 발췌)
일본 교역의 전진기지, 미국의 전시물자·구호물자의 유입 통로이자 수출입 물류의 진출입로인 부산항과 도심 운하의 존재는 부산, 그 가운데서도 부산진구에 쟁쟁한 기업이 입지하게 된 이유라는 설명도 있다.

향토시인 동길산 씨는 "그 시절 기업들 대부분이 수입 원자재를 가공해 재수출하는 업종들이었다"면서 "당시 부산항으로 들어온 원자재는 부산진구를 관통하는 하천인 동천을 통해 도심 깊숙이 들여올 수 있었고, 제일제당을 비롯한 기업들 대부분이 부산진구 일대에 자리잡은 것도 운하기능을 하고 있던 동천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부산은 이처럼 해방과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 한국 경제사에 일획을 긋는 역사적 기업과 기업인들의 주무대였으나, 70~80년대를 기점으로 하나둘 부산을 떠나게 된다.

대기업들의 창업터는 세월이 흐른 지금 대부분 아파트 단지로 변모했고, 부산을 연고로 성장한 기업들 상당수가 부산과의 연결고리를 끊다시피 했다.

김형균 부산학연구센터장은 "기업들은 고속 성장에 여념 없었고, 부산시를 비롯한 지역사회도 기업의 성장과 흥망성쇠 등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고 기업가의 창업정신을 널리 홍보하고 교육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면서 "때늦은 감이 있지만 기업가 정신, 창업정신을 기리고 교육할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놨다.

미국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처음으로 자동차를 만든 도시 디어본(디트로이트 인근)에 설립된 포드박물관이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배우는 요람이자 한 해 수백만 명이 다녀가는 관광명소가 된 것처럼, 지역사회와 대기업이 부산의 창업터를 활용해 젊은 세대를 위한 교육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센터장은 "최근 청년창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데, 젊은 사람들에게 아무리 창업을 권해도 밑바탕이 없으면 되지 않는다"면서 "도전정신과 창업정신, 기업가정신이 젊은 세대에게 오랜기간에 걸쳐 스며들도록 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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