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 심의, 신형 보도지침 같다”

[방송통신심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

11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방송통신심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권영철 CBS 선임기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방송통신심의를 제5공화국(전두환 정부) 시절의 ‘보도지침’에 비유했다.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신형(新型) 보도지침 같다. 민주화 정부 이후에 보도지침을 내릴 수 없으니, 방심위를 통해 진행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보도지침’이 뭔가. 제5공화국 시절, 정부가 언론 통제를 하기 위해 각 언론사에 시달하던 지침 아니던가. 나가도 되는 기사부터 나가서는 안 될 기사, 심지어 보도 방향과 내용, 형식까지 정부가 직접 결정해 언론에 내렸던, 30년 전에나 있었던 일이 지금도 일어난다고?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왜 신형 보도지침이라고 표현했는지, 이날 토론회의 주제 발제(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의결 관련 행정소송 판결 사례와 심의의 문제점)를 한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이 조사한 사례를 보자.

◇ 시국사건이나 정부 정책 비판하면 재갈 물리고

김 사무처장의 발제에 따르면, 방송사가 방심위의 징계에 불복해 행정 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총 13건. (이는 김 사무처장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 종합한 것으로, 실제로는 이보다 많을 수도 있다.) 방심위는 이 중 6건의 소송에서 패했다.

징계를 받고 행정소송을 제기한 방송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 정부 혹은 정책을 비판하거나 대통령이 불편해 할 만한 것들이었다.

① 2010년 11월, KBS <추적60분> -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다 / 지상파에서 유일하게 천안함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의문 제기.
② 2012년 1월, CBS <김미화의 여러분> -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꼽사리다’의 멤버 선대인 소장과 우석훈 교수가 출연해 소 값 하락사태와 정부경제정책 등에 비판적 논평.
③ 2013년 1월~3월, RTV -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 프레이저 보고서) -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역사해설 담은 다큐멘터리.
④ 2013년 9월, KBS <추적60분> - 간첩 혐의로 기소된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의 1심 무죄 판결 내용과 과정 전달.
⑤ 2013년 11월, CBS <김현정의 뉴스쇼> - 대선 개표 조작, NLL, 연평도 포격 발언 등으로 박근혜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던 박창진 신부를 인터뷰.
⑥ 2013년 11월, JTBC <뉴스9> -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와 관련한 김재연 전 통진당 대변인, 헌법학자 김종철 연세대 교수 인터뷰.
⑦ 2014년 2월, JTBC <뉴스 큐브 6> -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당사자인 유우성 씨와 변호인 인터뷰.
⑧ 2014년 4월, JTBC <뉴스 9> - 세월호 구조작업과 관련한 이종인 대표와 다이빙벨 인터뷰.
⑨ 2013년 5월, MBC <뉴스데스크> - 앵커 배경화면에 박근혜 대통령 얼굴 옆에 인공기 배치, 인공기가 ‘대한민국’ 글자를 가림.

김 사무처장은 이 심의 행태의 특징을 ▲공안 심의(국정원, 통진당, NLL, 역사 이데올로기, 권력비판) ▲정치 심의(재판 계속 중인 사건 활용) ▲편향 심의(권력 비판에 대한 비대칭 규제, 공편에 대한 무한 애정)라고, 박건식 PD연합회장의 표현을 인용해 정리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①~⑧과 ⑨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 김 사무처장은 “친(親) 박근혜 정부의 성향을 보이고 있는 MBC가 징계를 받은 점도 흥미롭지만, 실제 방송 내용을 보면 방심위가 얼마나 비상식적인 심의를 자행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전했다.

해당 뉴스는 박근혜 대통령이 기동 헬리콥터 수리온의 실전배치를 축하하는 기념식에 참석해 격려했다는 내용. 문제가 된 것은 뉴스를 소개하는 앵커 배경화면이다. 방심위는 인공기가 박 대통령 바로 옆에 배치되고, 대한민국이라는 글자를 가린 게 문제라며, 품위유지(제27조) 조항을 적용해 과징금 이하 최고제재인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를 의결했다. 김 사무처장은 “이쯤 되면 심의가 아니라 심기 경호라고 해야 할 법하다”고 표현했다.

◇ 바로잡기까지 약 4년 … 상처뿐인 영광

대법 판결을 통해 방심위의 처분을 취소한 사례는 KBS <추척60분> - ‘천안함’, CBS <김미화의 여러분> - ‘축산정책’ 등 총 2건인데, 문제는 이 결과를 얻기까지의 과정이 녹록치 않다.


방심위 심의 의결서를 보면, <추적60분>이 ‘제작진 측 전문가의 주장 위주로 방송’하고, ‘국방부(정부)의 입장을 충실히 전달하지 못한 점’을 중징계의 이유로 들고 있다. <김미화의 여러분>은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을 단정적.반복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을 여과 없이 일방적으로 방송했다’가 징계 이유이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결은 다르다.

“정부나 공직자에 대한 격렬하고 신랄하며 가끔은 불쾌할 정도의 날카로운 공격이 포함된다고 할지라도 결코 억제되어서는 안 되며 가급적 광범위하고 활발하게 전개되도록 보장되어야 할 것.” (<추적60분> 판결문 中)
“판결문에도 나와 있지만 정부가 정책을 홍보할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그렇게 완벽한 기계적인 균형을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김미화의 여러분> 판결에 대한 서울행정법원 문병호 공보판사의 설명)

이 결과를 얻기까지 KBS는 총 4년, CBS는 2년 4개월이 소요됐다. 이 과정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현업인들이 진다. 이날 토론회 토론자로 참석한 안주식 KBS PD협회장의 말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재판의 속도는 더디기만 했고, 상대방 측의 주요 증인(주로 국방부 인사)들이 공판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공판도 자주 연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변론은 종결됐지만 느닷없이 재판부는 다음 달에 다시 변론 재개를 결정하는 등 절차는 계속 느리게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방송프로그램 제작에 바쁜 현업 제작진은 계속 재판 절차에 시달려야 했다. (중략) 결과적(승소 판결)으로 제작진은 정당성과 명분을 얻기는 했지만 4년을 시달린 점, 후속편 제작 포기 등을 고려하면 상처뿐인 영광이다.”

현업인들이 피해를 받는 반면, 심의위원 중에는 이에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권영철 CBS 선임기자의 말이다.

“소송을 하면서 방심위나 방통위가 기계적인 항소와 상고를 한다는 점을 느꼈다. 무조건 대법원까지 가야만 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방통위의 재심 기능이 유명무실하다. (중략) 소송에서 패소하면서도 비슷한 사안에 대해 제재를 남발한다면 방송에 대한 지난친 간법이며 일종의 ‘길들이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중략) 심의위원들은 떠나면 그만이다. 책임은 누구에게 묻나. 최소한 민사로라도 책임지게 하는 부분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

◇ 정부·기업 비판하는 인터넷 게시글도 "다 내려"

방심위가 방송만 심의하지 않는다. 통신 또한 방심위의 감시 아래 있다. 김 사무처장은 “이 역시 주로 정부와 기업 등 권력자를 비판하는 글을 권력의 입장에 맞게 삭제했다”며 행정소송이 제기된 사례를 들었다.

① 2011년 7월 방심위는 ‘2MB18nomA'라는 트위터 아이디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해당 계정을 페이스북, 블로그 등에 접속하지 못하게 차단시켰다.
②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가 다음 블로그에 국내산 시멘트 유해성을 고발하는 게시물을 게재했다. 2009년 4월 방심위는 한국양회공업협회의 신고에 따라 심의하고, 해당 게시물을 명예훼손 정보에 해당한다며 시정요구(해당정보의 삭제)를 결정했다.
③ 2008년 7월 1일 방심위는 조중동 광고중단 운동 관련 게시물이 ‘위법조장 정보’이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이라는 이유를 들어 삭제 요구를 결정했다.
④ 2011년 8월 한총련 사이트, 인권운동사랑방, 노동전선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북한 관련 게시물이 국보법 7조(찬양고무죄)를 위반한 불법정보에 해당한다며 각각 사이트 폐쇄와 게시물 삭제를 명령했다.

최병성 목사의 ‘쓰레기 시멘트’ 사건의 소송을 수행했던 장주영 변호사(법무법인 상록 대표변호사)는 이날 토론회에서 “방심위의 제재가 자의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있다”고 전했다.

“특히 명예훼손 정보는 허위사실에 해당하는지, 권리침해 해당하는지 심의 단계에서 불분명한 경우가 많고, 강제 조사권이 없는 방심위가 이를 밝히기도 어려운데”다 “사안별로 깊이있는 검토와 고도의 판단이 필요함에도 방심위가 섣불리 자의적으로 시정조치를 남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방심위는 심의규정에서 명확히 한 바와 같이 최소규제의 원칙을 지키고 명백한 사안에 한해서 시정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해랑 교수는 “방심위가 규제 방식이 전혀 다른 방송(공적영역)과 통신(사적영역)을 하나의 일괄된 심의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적합하지도 않으며, 통신이라는 사적영역까지 국가가 관리하는 건 통제사회다”고 정의했다.

◇ 아직도 배고픈 방심위…통신심의규정 개정 움직임

이러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방심위가 이제는 통신심의규정을 개정하면서 권한을 더욱 강화하려 한다.

방심위는 최근 피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신청 또는 방심위의 직권으로 명예훼손 게시물을 삭제, 차단할 수 있도록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명예훼손 심의를 ‘친고죄’ 방식에서 ‘반의사불벌죄’로 바꾸겠다는 것.

시민사회단체들은 개정안이 적용될 경우 대통령 등 공인에 대한 비판 글을 손쉽게 차단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 역시 과거 방심위의 항정소송 판결사례를 살펴 현 상황도 문제가 있음을 밝히려는 것이었다.

김 사무처장은 방심위의 개선 방향으로 ▲방심위 해체, 방송심의기구 축소, 인터넷 행정심의 폐지 ▲방송사 전치주의 도입(행정심의기구가 심의 개시하기 이전에 반드시 방송사의 불만처리 과정을 거치고, 그럼에도 해소되지 않을 경우에만 심의) ▲행정기구에 의한 심의개시 금지 ▲시청자 참여 심의의 도입과 시청자 모니터활동의 지원 강화 ▲심의규정의 개선과 공정성 심의의 축소 등을 제시했다.

한편 참여연대와 언론개혁시민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10일부터 방심위의 통신심의규정 개정 강행 처리 시도를 막기 위한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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