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경남 통영의 한 항구. 모자를 쓴 한 남성이 허름한 2층 건물 1층에 '선원 휴게소'라고 적힌 문 앞을 서성였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간 남성에게 사무실에 있던 체격이 좋은 한 남성이 "연간 3천만 원 이상 벌 수 있는 선원 자리가 있다"라며 말을 건넸다.
많은 돈을 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 남성은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고, 이윽고 선원 채용 계약서라고 적힌 서류에 이름을 적었다. 얼마 후 해경이 들이닥쳐 확인한 결과 해당 사무실은 선원 휴게소라는 이름을 가장한 무허가 직업소개소였다.
부산해양경비안전서는 무허가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며 부당 이득을 취한 혐의(직업안정법 위반)로 박모(55)씨를 구속하고 한모(57)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박씨는 지난 2013년 11월부터 최근까지 경남 통영에 무허가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며 모두 47차례에 걸쳐 6천900만 원 상당의 인건비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통영의 한 조직폭력배 출신인 박씨는 직업소개소를 찾아온 구직자들에게 숙식과 유흥을 제공하고 도박판까지 벌여 빚을 지게 한 뒤, 선주에게 이들을 소개하며 '인건비 선급금' 명목으로 돈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가 소개한 선원 가운데는 정상적인 선원 생활이 불가능한 5급 지체장애인도 포함돼 있었다. 박씨는 또 장애인 선원이 고된 선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자, "소개비를 환급해달라"고 요구하는 선주를 협박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홍모(59)씨는 목포에서 무허가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며 지난 6월쯤 지적장애 3급 A(30)씨를 유인해 낙도의 전복양식장에 넘긴 뒤 134만 원 상당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홍씨는 사실상 의사 판단이 불가능한 A씨를 "돈 벌어서 부모님께 효도하게 해주겠다"라며 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경찰에 입건된 무허가 업자 6명에게 돈을 뜯기거나 속아 넘어간 선주는 33명, 선원은 102명에 달했고 이 가운데는 장애인도 4명 포함돼 있었다. 이들이 이 같은 수법으로 챙긴 금액은 적게는 100여만 원에서 많게는 1억 5천만 원에 달했다.
해경은 이들이 연안 조업선의 경우 정식 직업소개소를 통해서는 선원을 구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려 범행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부산해양경비안전서 이현철 형사계장은 "피해 선주 대다수가 연안 통발어선, 꽃게나 새우 등 조업 환경이 열악한 상황이라 선원을 구하기 쉽지 않다"라며 "이 같은 점 때문에 선원을 빨리 구할 수 있는 무허가 소개소를 이용하다가 피해를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계장은 또 "선주의 경우 신분이 확실해 피해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피해 선원의 경우 주거가 불특정하거나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피해규모조차 예측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박씨 등에게 속아 넘어간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