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조선왕조실록] 여진족어 통역사를 확충하다

음력 6월 25일

조선왕조실록, 오늘은 여진족 언어 통역사를 양성했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1434년(세종 16)에 예조에서 여진족 통역사가 너무 부족하다며 세종에게 충원을 요청했습니다.

예조에 따르면 당시 여진족의 문자를 이해하는 사람이 불과 1,2명 뿐이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여진족 통역은 불가능해질 형편이었습니다.


이에 예조에서는 함길도(함경도)의 여진인 자제 중에서 여진 문자를 이해하는 4~5명을 선발해 사역원에서 가르친다음 통역사로 임명하면 될 것이라고 제안했고, 세종은 이를 허가했습니다.

■ 세종 16년 (1434) : 여진 문자를 아는 사람을 사역원에서 훈련시키도록 하다

■ 세종 23년 (1441) : 한더위로 가벼운 죄인들을 석방하다
⇒ 날씨가 몹시 더워지자 죄가 가벼운 죄인들을 석방했다

■ 광해 4년 (1612) : 임진년에 영변에서 이천까지 배종한 사람들을 조사하여 공을 기록토록 하다
⇒ 광해군은 자신이 임진년의 공로로 존호를 받게 되자 혼자만 받기 미안하다며 당시 함께 임금을 모시느라 고생한 사람들의 공도 기록하라는 지시했다

■ 광해 9년 (1617) : 신궐을 비싼 당주홍이 아닌 값이 싼 국산 주홍으로 칠할 것을 청해 허락함
⇒ 새로 짓는 대궐을 비싼 중국산 대신 값이 싼 국산 염료로 칠하라고 지시했다

■ 고종 11년 (1874) : 일본이 서양 나라들과 통교하고 있다는 소식을 북경으로부터 듣다
⇒ 일본이 서양의 강대국과 외교적인 접촉을 한다는 것을 중국 정부로부터 듣고 변방의 경계를 강화하라고 지시 했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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