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향군인회는 전역한 군인들의 조직으로 일반회원만 천만명이 넘는 가히 공룡조직이라고 할만하다. 회비를 낸 종신회원이 130만명이나 된다.
1년 예산이 수백억원에 이르는 대한민국 최대 안보단체다.
선거 때는 영원한 여당의 지원군이기도 하다. 전세버스 사업과 각종 상조회 등 벌이는 사업이 10여개에 이른다. 정부로부터 각종 수의계약과 세제혜택을 받고 매년 수십억원씩 지원금을 받는다.
그런 재향군인회가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 1952년 향군 창설 이후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되기도 했다.
내홍은 조남풍 회장이 새로 당선된 지난 4월 회장선거 이후부터 시작됐다.
선거 당시 금품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았고 고소고발전으로 이어졌다.
조남풍 회장이 취임한 이후에는 인사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조남풍 회장이 선거캠프에 있던 측근들을 향군조직에 무더기 입성시킨 탓이다. 이 과정에서 불법성이 있었다는 진정서가 들어갔고 보훈처가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보훈처의 감사는 인사·행정 분야에 대한 수박겉핥기 감사에 그쳤고 금품수수 등의 본질적인 비리에는 손도 못댔다.
국가보훈처나 향군이나 같은 군 조직이라는 '제식구 의식'이 감싸기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조남풍 회장은 내부비리 의혹을 외부에 알렸다며 노조위원장에 대한 감사를 지시했다. 보복감사라는 반발이 뒤따랐다.
이러자, 노동조합과 재향군인회 이사대표 등으로 이뤄진 '향군 정상화모임'은 조남풍 회장을 선거법 위반과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맞불을 놓았다.
조남풍 회장은 지난 4일 공식 회의석상에서 자신에 반대하는 향군이사와 노조간부들을 겨냥해 욕설과 막말을 퍼부었다.
회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조 회장은 최근의 상황을 언급하며 "내가 보안사령관 때 조사도 안하고 다 커버해줬다. 그런데 지금 제까짓 ㅇㅇ가 말이야. 까불지마 이 ㅇㅇ들, 가만 안두겠다", "나는 당당하게 얘기한다. 그 ㅇㅇ들이라고. 그런 ㅇㅇ들이 판치는 재향군인회, 대한민국이 되겠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지금 제기되고 있는 의혹과 진정 내용은 여전히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 하나회 출신 조남풍 회장, 박근혜 캠프 출신
조남풍 회장은 1938년생 충남 서천 출신이다. 육사 18기로 전형적인 야전사령관 출신이다.
노태우정부 시절 보안사령관과 1군사령관을 지냈다. 1993년에 육군대장으로 예편한 뒤에 정치권 주변을 맴돌다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캠프 안보전략부장을 지냈다.
2009년과 2012년에 재향군인회장 선거에 나서 고배를 마셨다가 삼수 끝에 향군회장에 올랐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현 정권의 지원이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조남풍 회장의 경력 중에 특이한 것은 하나회 출신이라는 것이다. 12.12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노태우 신군부의 핵심세력이 하나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보안사 대공처장과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지낸 이학봉 전 의원이 조남풍 회장의 육사 18기 동기생이며 같은 하나회 멤버이다.
하나회는 해방이후 한국 군 역사에 가장 강력하고 끈끈한 군내 사조직으로 유명하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가장 먼저 한일이 하나회 척결이었다.
그러나, 하나회 명맥은 끊기지 않았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하나회 출신들은 정치권과 공기업, 경제계 등에서 공식·비공식으로 활동하며 여전히 존재감을 이어오고 있다.
조남풍 회장을 감사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육사 27기로 조남풍 회장의 육사 후배다.
박승춘 보훈처장은 조남풍 향군회장을 둘러싼 잡음이 일파만파로 퍼지자 조 회장에게 거취문제와 관련해 결자해지하라는 뜻을 직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대해 조남풍 회장은 "육사 후배가, 럭비부 후배가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 한쪽 얘기만 들어서야 되겠느냐?"며 강력히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남풍 회장은 향군이나 보훈처에서나 여전히 사령관님이다. 지금 향군의 내분도 군 사령관식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조남풍 회장은 어쩌면 하나회 출신의 마지막 향군회장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2.12 군사쿠데타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하나회의 망령은 군사정권 시절을 오욕의 역사로 기억하는 국민들에게는 악몽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