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위로공단'은 특별하다. 베니스 영화제가 아닌,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은사자 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메가폰을 잡은 임흥순 감독은 공공 미술가이기도 하다. 현실을 담아 낸 다큐멘터리 영화가 '미학적'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여기에 있다.
다큐멘터리 곳곳은 상징적 이미지와 퍼포먼스로 채워져 있다. 카메라는 빠져들 정도로 가까이, 그러다가도 아주 멀리 대상을 관조한다.
공간 속 눈을 가린 소녀들, 빈 사무실에 덩그러니 남은 의자, 숲을 걷는 두 소녀의 다리, 저문 하늘을 휘도는 검은 새 무리. 긴장감 넘치는 음악과 예민한 소리들이 섞여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이런 작업들은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만나 새로운 힘을 가진다.
임 감독은 4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 왕십리CGV에서 열린 '위로공단' 시사회에서 "미술관에 가면 쉽고 영화관에 가면 어려운 영화다. 미술은 기호적이고 함축적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직접적으로 현실과 삶의 문제를 보여주려는 표정과 이야기가 좀 더 잘 전달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멋있는 미적 포장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얼굴을 가린 소녀들은 어머니에게 봉제 공장 이야기를 듣고 느낀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눈, 코, 입에 먼지나 실밥이 많이 들어왔다고 하더라. 상상했을 때, 살고자 하는 일터인데 죽음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곳들을 가리고 싶었을 것이고, 가려드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임 감독은 "그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여공이나 '공순이'라고 불렀던 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런 고민으로 인터뷰를 시작했고, 3년 동안 66명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에는 22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등장한다"고 밝혔다.
중년부터 20대 심지어 외국인 여성 노동자까지, 영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외된 여성 노동자들의 흔적을 담담하게 짚어 나가며 그 범위를 확장한다. 격한 클라이막스도 극적인 꾸밈도 없다. 그들의 증언이 슬픔과 분노로만 가득 차 있지 않은 탓이다. 가혹하게 보이지만 그 삶은 당당한 생존이었고, 버릴 수 없는 추억이었고, 이제 누군가의 현실이다.
지하 봉제 공장에서 일한 어머니와 대형마트 직원인 여동생. 한 여성 노동자는 임 감독을 길렀고, 다른 여성 노동자는 그와 함께 자라났다. 이들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하는 임 감독이 '위로공단'을 만들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임 감독은 "고발이나 분노의 차원이 아니라, 그 당시에 나누고자 했고, 함께하고자 했던 따뜻한 느낌을 어떻게 미학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진보나 보수의 개념도 아니다. 여성 노동자들을 지식이나 이론으로 대상화하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그냥 사람 사는 것에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고통스럽고 불편하고, 쉽지 않은 이야기를 많은 사람이 함께 듣고 나누는 것이 사회 속에서 개인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가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로공단'은 노동이나 고발 영화가 아니다. 그저 삶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임 감독은 다양한 해석을 막을 수는 없지만 지나친 정치적 해석은 경계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특히 이분법적인 시각보다 20대 청년들과 시민들이 영화를 보길 바란다.
그는 "이런 작품의 핵심은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노동, 정치, 사회 문제뿐 아니라 개인 삶과 일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들어주는 것만 해도 큰 위로다. 그런 생각을 안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청년들에게는 삶의 방향을 알 수 있는 영화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고백했다.
'위로공단'은 40여 년을 아우르는 여성 노동자들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휴먼 다큐멘터리 영화다. 오는 1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