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기간 한 살만 늘려줬으면…" 어른이 된 신림동 아이들

[신림동 아이들, 좌절 그리고 희망]③ 성인돼도 떠나지 못하는 신림동…소액대출 하며 빈곤층 전락

서울 신림동에 첫 발을 내딛은 14살 아이들은 20살이 돼도 떠나지 못한다. 처음 신림동에 오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거의 같다. 돈이 없어 범죄를 저지르고, 전과가 더해지면서 아이들은 사기꾼·브로커로 전락한다. CBS노컷뉴스는 가출 청소년의 대표적 집결지인 '신림동' 심층취재를 통해, 거리의 아이들이 느끼는 좌절과 그 안의 희망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자료사진)
올해 20살이 된 가출 청소년 전기섭(가명)군에게 여자친구는 '돈줄'이다. 거리에서 만난 15살 여자 친구는 현재 '조건만남'으로 돈을 벌고 있다.

며칠 전에는 "경찰과 (조건을) 했다"며 명함도 받아왔다.

"명함 보여주면서 자기가 경찰이랑 했다고 하더라고요. 경찰도 할 줄 몰랐어요."

여자친구가 '성'(性)을 팔아 하루 용돈을 벌어오는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전군은 조건을 빌미로 성매수남으로부터 돈을 뜯는 이른바 조건만남 사기에까지 여자친구를 가담시켰다.


20살인 박정민(가명)군은 신림동 근처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42만원짜리 반지하 방에서 가출팸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다. 방세는 친구의 여자친구가 내준다.

"그전에는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는데 3개월을 못 가더라고요. 고깃집, 편의점 알바도 해보고… 지금은 같이 사는 친구 세명 다 그냥 놀고 먹고 자고 있어요."

14살 때 처음 집을 나온 뒤 6년이 흘렀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궁핍한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청소년센터 밥차로 끼니를 때우거나 돈이 없을 때에는 쉼터 동생들에게 1000원, 2000원씩 손을 벌리기도 한다.

누구보다 신림동을 벗어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답답할 뿐이다.

"새롭게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크죠, 정말 신림동을 떠나고 싶어요, 그런데 갈 데가 없으니까… 쉼터에서라도 편히 있을 수 있게 청소년 기간을 한 살만 더 늘려줬으면 좋겠어요."

신림동에 첫발을 디딘 가출 청소년들 중 상당수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경제적으로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직장을 가져 스스로 일어서겠다고 생각하지만 부족한 학력에 가출 청소년 출신이라는 낙인까지 찍혀 자립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5일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19개 청소년 쉼터를 이용한 청소년은 모두 50만명. 그러나 중장기 쉼터에 입소한 청소년의 가정 복귀율은 평균 35.7%, 사회 복귀율은 15.6%에 그쳤다.

10명 중 9명은 사회 구성원으로 제역할을 하지 못한 채 학교나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는 얘기다.

청소년도움센터 '친구랑'의 최선이 상담사는 "집을 나온 뒤 거리에서 성인이 된 아이들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다"면서도 "추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굉장히 많은 수의 아이들이 거리에서 성인으로 성장한다"고 말했다.

최 상담사는 "20살이 됐다고 쉼터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돈을 벌어 자신이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그렇게 자립적인 아이들은 많지 않다"며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계기가 필요하지만 그런 기회를 가진 아이는 10명 중 1명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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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액대출, 불법 '휴대폰 내구제'로 신용불량자까지

일부 가출 청소년들은 당장 쓸 돈이 필요해 소액 대출을 받거나, 자신 명의로 개통한 휴대폰을 되파는 일명 '휴대폰 내구제'로 급전을 마련하기도 한다.

최신 스마트폰을 약정을 걸어 개통한 뒤 유심칩을 빼고 빈 기계를 팔아 목돈을 손에 쥐는 '휴대폰 내구제'로 매달 17만원의 빚을 갚고 있다는 한 가출 청소년은 "쉽게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내구제를 시작했는데 2년 후까지 빚을 갚아야 한다"며 "이걸 갚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된다"고 걱정했다.

청소년도움센터 '친구랑'의 임창세 사회복지사는 "19살이 넘어 금융거래 할 수 있는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소액대출을 받는다"며 "이번엔 '니가 받아라'하면서 돈을 마련하지만 결국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이렇듯 준비없이 성인이 된 신림동 아이들은 열악한 주거 환경과 끼니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노숙인 실태 조사에서 전체 노숙인 1만 3000여명 중 29세 이하 청년 노숙인은 거리 노숙인의 3.7%를 차지했다.

성인 노숙인 쉼터 관계자는 "청년 노숙인 쉼터를 찾는 20대 노숙인 중 청소년 쉼터를 거쳐 온 사람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한국 청소년정책연구원 백혜정 연구위원은 "대학 4년을 나와도 자립이 어려운 사회에서 가출 청소년들에게 나이가 됐으니 자립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라며 "저학력·비숙련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 연구위원은 또 "쉼터 이외에도 성인이 된 가출 청소년들이 쉴 수 있는 주거 지원과 취업을 위한 학업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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