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관해임 포함 높은 단계 문책 필요"
- "비밀주의는 오판"
“초동대처가 실패한 것은 대통령부터 총리, 장관, 국민들까지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그렇더라도 실패에 대해서는 담당 부처의 최고책임자가 정치적인 모든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해임까지 포함해서...”
국회 메르스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새누리당 신상진 의원이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의 해임을 거듭 언급했다. 특히 그는 방역당국의 주요 책임자들에 대해서도 법적 조치를 포함해 강도 높은 문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태에 책임지는 모습이나 경각심을 주지 않고 구조만 바꾼다고 되는게 아니라 맡은 사람들의 책임의식, 소명의식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대형참사 뒤 으레 뒤따르는 후속조치와 관련, 외형적인 변화보다 정책담당자의 의식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의 사과가 필요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8월 말, WHO기준에 맞는 진정한 메르스 종식이 선언된다면 사과든, 위로든, 어떤 형태든 말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야당이 요구하는 국정조사와 관련, “정부에서 책임을 지는 일들이 국민정서나 이미 드러난 사실과 다르게 된다면, 국정조사든 검찰 고발이든 진상규명을 위한 모든 방법은 다 쓸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설치됐던 국회 메르스대책특위는 지난달 28일 9차 회의를 끝으로 활동이 종료됐다. 메르스특위는 ▲보고서초안 채택 ▲대정부촉구결의안 ▲감사원 감사청구 등 3가지를 의결했다.
보고서 초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보건복지부에서 별로로 떼어 보건부를 신설하는 안이다. 그는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 감염병이나 건강보험, 의료산업 수출, 해외환자 유치 등 보건 분야에 대한 독립적인 영역이 필요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부처신설이 현실적으로 당장 어렵다면 복수차관제 실시, 혹은 질병관리본부의 청 또는 처 독립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초동대처의 문제점과 정부의 비밀주의도 보고서 초안에서 지적됐다.
신 의원은 “첫번째 환자가 확진된 뒤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 3명이 평택성모병원에 파견됐는데, 3명 모두 정규직이 아닌 공중보건의였다”며 인력의 문제를 제기했다. 메르스 발생 당시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은 정규직 2명에 나머지 32명은 공중보건의로 채우고 있었다.
또 2미터 이내, 1시간 이상 접촉 등 경직된 기준을 적용해 격리대상자를 초기에 너무 좁게 잡은 것도 치명적인 실책으로 지적됐고, 14번 슈퍼전파자가 삼성서울병원에 옮겨갈 때까지 평택성모병원의 많은 환자들이 대책없이 퇴원조치된 것도 환자 발생을 키웠다.
사이렌 안 울린 메르스...비밀주의 오판
지자체가 선제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기 전까지 정부가 견지했던 비밀주의는 커다른 오판이라고 규정했다.
메르스특위는 진상규명 차원에서 ▲초동대응의 실패와 정보비공개 ▲삼성서울병원의 방역실패 원인 등에 대해 감사청구를 하기로 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겪으며 얻게 된 메르스 사태의 교훈은 “방역은 곧 경제이고 안보”라고 강조했다. 단순한 질병 차원에 국한해서 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관계자를 적당히 문책하고 음압병실 몇 개 늘리는 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시스템을 개선하고 전문가를 배치해 사전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 의원은 “앞으로 국가방역체계에 대해 국무총리 직속으로 감염병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중장기계획까지 꾸준히 밀고나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오픈프라이머리 정치신인 진입장벽 낮춰야
김무성 대표가 추진중인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에는 큰 틀에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했다. 다만 정치신인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가 추진중인 개혁 방안 중 국회의원 정수 증원에는 강력 반대했다. 다만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현행 비례대표의석을 영호남 지역편중을 깨는 방향으로 각 당이 추천하자고 제안했다.
한편, 지난 2000년 의약분업사태 당시 반대투쟁의 선봉에 섰던 그에게 지금도 생각이 비슷하냐고 물었다. 그는 의사협회 의권쟁취투쟁위원장으로서 반대투쟁과 집단폐업을 주도했다.
“당시 의약분업이 재정소요가 굉장히 많이 든다는 것을 정부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의약분업과 아울러 병의원에서 다뤘던 약에 대한 실거래가를 시행하면서 약값 거품을 빼서 남는 4천억원의 재원으로 의약분업에 소요되는 처방전료, 조제료, 기타 비용을 충분히 충당할 줄 알고 시행했는데 실제 진행하다보니 5조원의 건강보험재정이 더 소요됐던 겁니다. 그래서 당시 5년 한시법으로 만들어진게 국민건강보험특별법이란 것인데, 건강보험 수입의 20%를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입니다. 근데 계속 연장돼 지금까지도 국고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 ※ 신상진 의원은? |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 출신이지만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무료 의료 봉사 등을 통해 다진 탄탄한 지역기반이 배경이 됐다. 학창시절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한 그는 대학 입학 뒤 15년 만에 의대를 졸업했다. 노동운동을 하다가 제적도 되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성남 상대원에서 공장생활도 했다. 1987년 결혼해 성남의 반지하방에서 생활하던 당시엔 생계를 위해 6개월간 참기름 장사도 했다. 깨를 사서 참기름을 짠 뒤 서울로 내다 팔았는데, 차도 없어 무거운 참기름 포대를 들고 지하철로 날랐다고 한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복학해 1991년에 의대를 졸업하고 92년부터 성남 상대원시장에서 병원을 개업했다. 당시 IMF사태 직후라 실직자들도 넘쳐났고 공장 다닐 때 알게 된 지인들도 병원을 많이 찾았는데, 이런 저런 인연으로 무료진료를 하게됐다. 특히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그는 일요일에 꾸준히 무료진료를 실시해 지금까지 그의 병원을 거쳐간 외국인노동자들은 약 1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