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9년(세종 1년)에 이종무가 이끄는 대마도 정벌대는 강한 바람 때문에 전진 기지였던 거제도로 한차례 되돌아가야 했던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대마도에 상륙했습니다.
오시에 조선 군함 10여척이 먼저 대마도에 도착했는데, 왜적들은 처음에 일본 본섬에서 온 병력인 줄 알고 술과 고기를 베풀며 환영하다가 대군이 뒤이어 계속 정박하자 그제서야 사태를 깨닫고 도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벌대는 대마도 전역을 수색하면서 크고 작은 적선 129척을 빼앗아 20척만 남기고 모두 불살라 버렸습니다. 또 왜적의 가옥 1939채를 불태웠고, 이과정에서 적병 114명의 머리를 베고, 21명을 포로로 사로 잡았습니다.
이정무는 적들이 왕래하는 중요한 길목을 차단하면서 도주한 왜적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 세종 4년 (1422) : 공조참판이 정확한 저울 1,500개를 만들어 올림
⇒ 시중에서 사용하는 저울이 부정확 하자 공조에 정확한 저울을 만들라고 지시했고 이때 1,500개의 정확한 저울이 완성되었다
■ 세종 27년 (1445) : 행동지내시부사 엄자치에게 과전 25결을 더 주도록 하다
⇒ 내관 엄자치에게 과전을 더 주었는데 이런 은혜 때문에 나중에 단종을 끝까지 모신 것은 아닐까
■ 광해 10년 (1618) : 제주의 김만일이 기르고 있는 말 수천 필을 전마로 쓰도록 하다
⇒ 전쟁에 대비해 제주도에서 개인이 기르는 말 1만 여 필을 군용으로 쓰게 하였다
■ 정조 19년 (1795) : 북영에 머물며 신하들의 청대를 불허함
⇒ 정조는 강화에 유배 보낸 이복동생 은언군(철종의 할아버지)을 몰래 도성에 불러들인 것과 관련해 신하들이 상소를 올려 괴롭히자 창덕궁 북쪽에 주둔한 군부대(북영)에 머물며 아무도 만나 주지 않았다
■ 고종 11년 (1874) : 인천부에서 1장(3.1m) 정도 되는 큰 거북을 바치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