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빼는 엘리엇…엘리엇 파동의 교훈은 '주주경영'

서초구 삼성 사옥 자료사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작업이 9부능선을 넘어선 상황에서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주식 처분 가능성을 내비쳐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파동은 일단락되는 분위기지만 엘리엇의 공세에서 비롯된 이번 사안은 경영권 제도 개선과 주주경영 강화 등 여러가지 과제를 남겼다.

◇'9부능선' 넘은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지난 17일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가결되고 합병작업이 착착 진행되면서 '9부능선'을 넘은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그룹은 두 회사의 합병작업을 8월말까지 마무리짓고 9월 1일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 9월14일 신주권 교부, 9월 15일 신주상장의 일정에 따라 회사의 절차적 통합을 추진하고 9월 1일 출범에 맞춰 사업부문 재편과 사옥이전 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합병의 마지막 관문은 합병반대론자들이 행사할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합병계약서상 매수청구권 행사액이 1조 5천억원을 넘어서면 합병이 무산될 수도 있지만 이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삼성그룹의 설명이다. 최대 복병으로 거론되는 엘리엇은 총 상장주식 1억5천600만주 가운데 7.12%인 1100만여주를 보유중(6천2백여억원)이다.

삼성그룹 고위관계자는 28일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주주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처분물량이 쏟아져도 매입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엘리엇이 최근 삼성물산에서 발을 빼는 듯한 징후가 잇따라 포착되면서 합병무산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기우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엘리엇은 지난 24일 삼성그룹 주식을 보유하면서 발급받은 실질주주증명서를 한국예탁결제원에 반납했다.

이 증명서는 주권행사를 위해 발급받는 것으로 이를 반납하는 순간 주식처분이 가능해 엘리엇이 주식을 처분할 것이란 관측을 낳고 있다.


◇"엘리엇, 투자이익 상당부분 실현"

또 다른 징후는 엘리엇이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하면서 이미 상당량의 이익을 실현했다는 주장들이다. 삼성그룹의 A 고위 임원은 29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합병 이슈속에서 주가가 출렁거릴 때 엘리엇이 공매도 등을 통해 투자이익의 상당부분을 이미 실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엘리엇이 보유한 지분의 매입가격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고 어떤 방법으로 손실위험을 헤지할 지에 대한 정보가 알려져 있지 않아 엘리엇의 투자에 따른 손익규모를 정확히 추산하기는 어렵다.

삼성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도 합병건이 무산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교보증권 B에널리스트는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긴 어렵다"면서도 "지금 (합병이)안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최종 합병 성사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윤성호기자
◇'주주가치 우선주의'와 '경영권 방어제도' 논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놓고 삼성그룹과 엘리엇간에 벌어진 찬반대립은 한국사회와 삼성그룹에 많은 과제와 시사점을 남겼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화두는 바로 주주가치경영이다. 사실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공세가 주주들 사이에서 먹힐 수 있었던 이유는 '합병=주주이익'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었다.

8월 17일 임시주주총회장에서 토론에 나섰던 다수의 주주들은 '주주이익을 위해서는 합병에 반대해야 하지만 삼성그룹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 찬성한다'는 주장을 폈다. 더구나 두 회사의 합병은 '주주이익보다는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의 한 방편아니냐'는 것이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였고 이런 사정이 삼성수뇌부를 노심초사하게 한 원인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 삼성그룹이 내놓은 삼성물산의 장기비전이다. 핵심은 ▲2020년 매출 60조원 세전이익 4조원 달성 ▲배당상향 ▲거버넌스위원회-CSR위원회 가동 등이지만 만시지탄이다.

특히, 삼성물산은 당시 "합병법인은 30% 수준의 배당성향을 지향하며, 회사 성장을 위한 투자기회, 사업성과 등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상향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OECD국가 중에서도 배당률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기업이 벌어들인 돈은 기업의 주인인 주주와 종업원에게 분배돼야 하지만 한국기업들은 그동안 임금과 배당률 인상에 인색했고 대부분의 이익은 관행적으로 회사에 유보돼왔다.

성균관대 최준선 교수는 29일 "우리나라 기업들이 일반적으로 주주들에게 소홀히 하는 점은 있었고 배당성향도 너무 낮아 기업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진 것이 사실이고 기업들이 반성해야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의 방어시스템과 관련해서도 찬반양론이 있었다. 논의의 핵심은 외부세력이 단기간에 치고빠지기식 공격에 나설때 매우 취약하다는 지적과 함께 이번 사안을 계기로 경영권의 안정적인 사수를 위한 제도보완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획일적 소유지배구조 규제 재검토와 경영권방어 수단인 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주장했다. 치고빠지기식 경영권 분쟁사례로 2004년 헤르메스의 삼성물산 지분 5%취득, 2005년 소버린의 SK경영권 획득시도, 2006년 칼 아이칸
의 KT&G 경영권 분쟁을 꼽았다. 전경련 주장의 요체는 1주1의결권, 소유-지배 비례원칙, 주주 평등 원칙의 완화다.

◇삼성그룹 이재용호의 과제는?

엘리엇 파문을 계기로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고 가슴을 쓸어내린 쪽은 삼성그룹이다. 적은 지분으로도 그룹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환상형 순환출자구조가 외부로부터의 악의적 공격에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이 그대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최준선 교수는 "이번 사태가 경영권 위협으로 이어질 것이란 주장은 비약"이라면서도 "툭하면 당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문제다. 단기간에 치고빠질 수 있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취약하다는 게 증명이 됐다"고 지적했다.

공정거래법이나 상법을 대기업들의 입맛에 맞도록 개정한다면 문제가 쉽사리 해결될 수 있지만 이는 옳은 방법도 아니고 기업의 성장보다는 분배정의에 방점을 찍고 있는 야당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따라서 삼성그룹은 한시라도 바삐 지주회사시스템으로의 그룹 계열사 재편에 나서야 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방편은 주주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그룹 지배구조를 재정비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삼성그룹은 오는 9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마무리되는대로 2단계 지배구조 정비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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