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젊은이들에게 '갑' 행세를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젊은이는 '을' 조차 될 수 없는 존재일테니까요.
교육과 실습을 목적으로 출퇴근을 하며, 사용자의 일정한 지휘감독을 받는 노동과 실습이 섞인 형태가 많아졌습니다. 호텔이나 리조트에서는 필요인력을 노동자가 아닌 실습생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주당 40시간 근무하는 노동자를 한명 고용하려면 100만원이 훌쩍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하지만 회사가 청년들에게 '어디서도 겪지 못할 소중한 배움과 경험을 주겠다'고 하면, 회사는 그 돈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아니, 한 푼도 필요 없을 수도 있어요. 청년은 억울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가 맞거든요. 돈으로도 사지 못할 '아주 아주' 소중한 경험이니까요.
2013년 교육부에서 발표한 '현장실습 매뉴얼’에 따르면, 현장실습은 현장 적응력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과 기업(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정해진 기간 동안 국·내외 산업현장에서 실습교육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학점을 부여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현장실습은 하고 싶은 학생이 지원해서 할 수도 있지만, 필수로 이수해야하는 학과가 있습니다. 그것도 별도로 실습비를 내가면서요. 그 대표적인 학과가 간호학과와 사회복지학과입니다.
국가에서 부여하는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 이상의 실습을 꼭 이수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현장실습 기관에서는 학생들을 눈엣가시 혹은 자원봉사자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현장실습을 하고 있거나 했던 학생들의 실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간호학과 4학년 노여운(가명) "병원에서는 우리들을 '짐'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그동안 했던 실습은, '실습'이라기 보단 '구경'에 가까웠습니다. 현장실습이라지만, '실습생'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낱 실습생이기 때문에 책임을 지지 못할 행동은 해선 안 됩니다. 따라서 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등의 '의료행위'는 일체 할 수 없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그럼 무슨 일을 하냐고요? 제가 주로 했던 일은 '바이탈 체크'입니다. 환자들의 혈압이나 체온을 재며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죠. 아주 기본적인 일이지만 빼먹어선 안 될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80여명이 넘는 환자들의 혈압을 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는 이것을 당당하게 노동이라고 말합니다.
병원이 천차만별이듯, 병원마다 우리를 대하는 태도도 달랐습니다.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며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는 간호사들도 있는 반면, 대전의 한 여성병원에선 오자마자 수술실의 흥건한 피 청소를 시키고 약품 냉장고 청소를 시키는 병원도 있었어요. 순간 제가 청소부인지 실습중인 간호학과 학생인지 헷갈렸습니다.
간호사보다 조무사들이 더 많은 병원도 있었습니다. 간호사가 지식이 많다면 조무사는 지식보다는 경험이 많다고 할 수 있겠죠. 지식과 경험을 완전히 분리해서 배워야 하는 건 아닙니다만, 우리들은 간호사가 되려는 학생들이기에 당연히 간호사에 의한 관리와 배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간호사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조무사들이 점령한 병원은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과 차원이 완전히 다른 현장이었어요. 병원의 필수인 위생은 뒷전이고 그들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는 학교에서 배운 것하고 달랐습니다. 배운 것을 써먹으려고 온 게 아니라 그동안 습득한 지식과 실제 현장의 괴리를 알기 위해 온 셈입니다.
몇몇 병원에서는 우리들을 '짐'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간호사들에게 우리는 그저 귀찮은 존재죠. 주기적으로 실습생들이 바뀌는데, 그럴 때 마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또 해야 하니까요. 실습비 명목으로 거두어가는 돈도 어찌 보면 '짐 보관비'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들도 분명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면서 우리가 왜 이런 처우를 당해야 하는 거죠?
우리는 배우러 왔지, 일하러 온 게 아닙니다. 노동 또한 교육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네가 한 게 뭐가 있냐"고 하신다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한낱 현장 실습생이기 때문입니다.
◇ 사회복지학과 4학년 김종태(가명) "자원봉사자와 나란히 종이봉투에 풀을 붙였습니다"
남들과 달리 '정신보건'이라는 특수한 분야를 경험 할 수 있기에 감사히 여기고 있죠. 저는 실습생이기에 거창한 일은 하지 않습니다. 센터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돕거나, 주민센터나 시청에 이동검진을 할 때 시민들에게 스트레스 검사를 해줍니다.
또 재활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미술·음악치료 강사의 보조 역할을 합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실습생들을 관리하는 슈퍼바이저는 항상 바쁩니다. 그래서 제가 궁금한 것들에 대해 속시원히 설명해줄 사람이 없어요. 현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말이에요. 가벼운 정신질환을 환자들의 돌발행동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외에도 본인이 '사회복지사'로서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들을 알고 싶어도 우리들에게 하나하나, 세세하게 알려주기엔 그들은 너무 바쁩니다.
실습기관은 학생들이 알아서 찾아야 합니다. 사회복지기관의 종류와 규모는 다양해서 어떤 기관에서 일하게 되느냐에 따라 교육의 질이 달라집니다.
교육은 일절 없고 노동만 하다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문화센터나 지역아동센터 등 운영이 어려운 곳일수록 더욱 그렇죠. 예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한여름에 냉방도 안 되고 선풍기 한 대 달랑 있는 단칸방에서 봉사시간 채우러 온 중학생 자원봉사자와 나란히 앉아 종이봉투에 풀을 붙였습니다. 구차해지는 순간이었죠.
나는 배우러 갔지, 봉사하러 간 게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발견하여 보살피고, 그들을 위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머리로 배웠고, 이제 그걸 몸으로 써먹으려 했는데 그게 왜 이리 힘든 걸까요.
'사회복지'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길에는 단순노동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대학교에서 배운 깊은 지식과 성찰들이 그곳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봤어요. 배움은 없었습니다. 또한 저의 자존감도 없어졌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정체성이 모호해집니다. 실습생인지 자원봉사자인지. 아니면 그저 귀찮은 어린아이인지.
◇ 누군가는 '관심'을 가져주세요
대학생 현장실습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실습에 맞는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 다른 하나는 교육은 없고 착취만 있다는 점입니다.
교육이 아닌 '구경'이라고 표현한 노여운 양도, 중학생 자원봉사자와 봉투에 풀칠만 하다 왔다는 김종태 군도 이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죠.
이런 사태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5월엔 고용노동부가 '인턴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기업이 현장실습이란 명목으로 대학생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폐단을 막기 위한 규정이 생기게 된 것이죠.
올 하반기 중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인턴의 '개념'을 정립하고 인턴과 노동자의 판단기준을 세워 인턴제도가 노동력 활용 수단이 되지 않도록 만들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지난 14일엔 교육부가 현장실습 대학생의 처우 등을 담은 '현장실습 운영지침' 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제정안에는 실습(노동) 시간을 비롯해 '산업재해 보상보험 의무화', 최저임금 이상으로 하는 '급여' 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 제정안은 올해 말까지 대학과 기업, 관계부처 등의 의견을 받아 국민들을 대상으로 널리 알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 '노동의 가치'를 '배움과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덧칠하지 마세요
노동과 교육, 노동과 스펙 그 중점에서 이 시대 젊은이들은 여기저기 방황하며 열정을 소비합니다. 현장실습을 놓고 교육인지 노동인지를 엄밀하게 구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육이면서 노동이니까요.
하지만 이 애매한 경계에 서있는 젊은이들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른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단 하나입니다. 그동안 일하기 위해 배웠어요. 여기서는 배우기 위해 일하고 싶어요. 더 이상 젊은이들의 노동을 '배움과 경험'으로 환산 하지 말아주세요. '열정 페이'는 없습니다. '열정'만 기억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