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금고 강도]'비뚤어진 父情' 50대 가장의 잘못된 선택(종합)

아들에게 사줬던 장남감 권총으로 새마을금고 직원 위협

지난 20일 서초구 잠원동 새마을금고에서 발생한 강도사건 피의 최모(53)씨가 검거됐다. 26일 오후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검거된 최 모씨가 조사를 받고 있다. 피의자 최 씨는 "사채 5천만원의 빚을 갚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시인했다. (사진=윤성호 기자)
퀵서비스 배달일을 하며 어렵게 살던 최모(53)씨는 지난 20일 장난감 권총을 손에 쥐고 서울 잠원동 새마을금고에 들어갔다.

사채빚 5000만원에 대한 압박감이 그를 잘못된 선택으로 이끌었다.

"(새마을금고) 직원들이 제가 겨눈 장난감 권총 총부리가 비틀어진 것을 알아볼까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사건 발생 6일만인 26일 정오쯤 강남구 수서동 지인의 아파트에서 붙잡힌 최씨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울먹였다.

최씨가 범행을 계획하며 해당 새마을금고를 처음 찾은 건 지난 17일이다.

4년 전에는 통장 개설을 위해 찾았지만 이번엔 목적이 달랐다.


청원경찰도 없고 폐쇄회로(CC)TV도 없다는 것을 파악한 최씨는 이날 바로 범행을 저지르려 했지만 너무 떨려 바로 빠져나왔다고 했다.

사흘 후인 20일 다시 새마을금고를 찾은 최씨는 현금 2400만원을 빼앗은 뒤 잠원동에서 한남대교 방면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했고 이후 행적은 CCTV에서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왜 장남감 권총을 들고 직원들을 위협했냐'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최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혹시나 사람을 해칠까봐 겁이 났다, 살아오면서 남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적은 없다, 칼을 들고 들어가기가 무서웠다"고 울먹였다.

지난 20일 서초구 잠원동 새마을금고에서 발생한 강도사건 피의 최 모(53)씨가 검거됐다. 26일 오후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강도사건에 사용한 범행도구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경찰에 압수된 장난감 권총은 플라스틱 재질로 된 조악한 수준으로 최씨가 15년 전 자신의 아들에게 사준 것이었다.

절도 전과는 있지만 강도 전과는 없는 최씨는 사채빚 5000만원 중 3000만원은 20대 아들 형사합의금 때문이었다고 호소했다.

지난해 아들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형사합의금 3000만원이 필요했던 데다, 생활비마저 쪼들리면서 2000만원을 추가로 빌린 것.

최씨는 "생활비와 아들 합의금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했다"며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최씨는 범행 당일 새마을금고에서 빼앗은 2400만원 중 2150만원 정도를 빚을 진 지인들에게 바로 송금했다.

그리고 곧바로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정선 카지노로 이동해 나머지 돈을 거의 다 잃었다.

이후 24일 서울로 다시 돌아온 최씨는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있는 아는 동생 집에 머물다가 경찰의 잠복 끝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최씨는 서울로 돌아온 이후 과천 경마장과 경륜장을 전전하며 또다른 꿈을 꿨던 것으로도 드러났다.

경찰이 최씨를 붙잡을 당시 호주머니 등에서 25일자로 된 경륜장 베팅 영수증 두개를 압수했던 것.

최씨는 "정선카지노와 경마장 등에서 돈을 따 다시 2400만원을 만들어 새마을금고에 갖다 주고 자수하려 했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앞서 최씨는 지난 20일 낮 12시 20분쯤 서울 잠원동 새마을금고에 침입해 장난감 권총으로 직원과 고객들을 위협한 뒤 현금 2400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경찰은 사건 발생 수일이 지나도록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자 서초경찰서 강력팀 외에 서울 광역수사대 소속 형사와 CCTV 전문가 십수명을 추가로 투입해 대대적인 검거에 나섰다.

지난 20일 서초구 잠원동 새마을금고에서 발생한 강도사건 피의 최 모(53)씨가 검거됐다. 26일 오후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강도사건에 사용한 범행도구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경찰은 범행 당일이 아닌 사흘 전 새마을금고 근처 CCTV에 찍힌 최씨의 모습을 보고 동선을 역추적했다.

범행 당일 현장에 지문 한 점 남기지 않은 최씨는 사흘 전 범행에 쓰인 같은 오토바이를 타고 비슷한 복장으로 나타났고, 경찰은 이전 동선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최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당초 경찰은 범인이 21년 전 같은 새마을금고에서 발생한 강도 사건의 동일범으로 추정했지만 최씨는 지난 사건과 별 관련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병우 서초경찰서 형사과장은 "최씨는 검거 당시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며 "검거 이후에도 범행 전체를 순순히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씨의 구체적인 범행동기와 이후 행적 등을 추가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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