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뽈하고 방매이만 좀 도와조도…."

[연속기획 '기적'①] 독립야구단 '연천미라클' 이야기

여기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프로팀에 가지 못한 야구 선수들입니다. 야구 미생들의 뜨거운 눈물과 꿈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 주]

"KBO나 대기업 구단은 뭐 하는 거야. 이렇게 어렵게 운동하는 애들 있는 거 알면서. 뽈(공)하고 방매이(배트)만 좀 도와조도….”

모자 아래 희끗한 정수리를 드러낸 프로야구 ‘원조 악바리’ 김인식 ‘연천 미라클 야구단’ 감독(62세)이 탄식을 내뱉었다.

프로야구 MBC청룡 시절 김인식 선수, 현 연천 미라클 야구단 감독(606경기 연속 출장 기록 보유)
대기업 스폰서가 없는 ‘독립야구단’인 연천 미라클이 지난 3월 20일 창단한 지 넉 달이 지났다.

이 구단에 몸담고 있는 선수들은 모두 28명. 새벽 6시 30분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연습에 몰두하고 프로팀 2,3군이나 대학팀과 평균 일주일에 한 경기 정도를 치른다.

무언가에 ‘꽂힌’ 남자들은 못 말리는 법이다. 당구에 미치면 누워도 천장이 당구대로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피끓는 청춘들이다.

이 젊은 남자들은 야구가 미치도록 하고 싶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해왔지만 프로팀에서 방출되거나 대학 진학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어서 그라운드에 대한 그리움이 그 누구보다 짙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선수들은 한 달에 숙식비조로 70만 원을 낸다. 이 ‘월사금’(회비)을 마련하느라 몇 달 야간 경비를 서서 돈을 모아 들어온 선수들도 있고 지금도 훈련이 없는 주말엔 리틀야구 교실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선수들도 있다.

대개는 어찌 어찌 월 70만 원을 내지만 아예 못 내는 선수도 있어서 돈 얘기 해야 하는 구단 관계자나 선수 모두 속이 까맣게 탄다.

미라클 소속 선수들은 연천군에서 올해 2억 원을 지원하고 군내에 건립돼 있는 연천베이스볼파크 야구장과 부속 시설을 제공해 이 곳에서 평소 합숙 훈련을 한다.

보통의 프로야구단은 3군(육성군) 선수도 번듯한 숙소에 좋은 식사를 제공받지만 미라클 야구단 선수들은 한 방에서 18명이 이층 침대를 쓰는 등 말 그대로 ‘합숙’을 한다.



한 끼 7,000원인 구내 식당의 식사는 그냥 저냥 한 끼 때우는 수준. 돈 없는 구단은 선수 한 명당 유니폼 두 벌(홈 경기용과 원정 경기용 한 벌씩)을 지급했다. 선수들은 훈련때 이 유니폼을 입지 않는다. 아끼려고.

부러진 배트들. 다른 구단 이름이 보인다.
구단은 또 출범할 때 10만 원짜리 나무 배트 2개씩을 선수들에게 사서 나눠줬다. 이 마저도 부러진 선수는 프로팀 친구에게 배트를 얻어 쓴다.

한 개 만 원 정도하는 선수용 야구공은 120개 들이 10박스를 650만 원에 사서 지금까지 쓰고 있다. 하지만 대개 5개월 정도 쓸 수 있는 공의 수명이 반 이상 지나 대부분 낡은 상태다.

숙소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주민센터
지난 넉 달 동안 연습경기가 없는 평일은 새벽 6시 30분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열심히 연습하다 보니 스파이크 바닥도 닳아 가고 장갑도 부족하다.

야구선수에게 필수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은 합숙소엔 기구가 없어 대개 근처 주민센터를 이용하지만 멀리 철원시내까지 나가는 선수들도 있다. 물리치료사나 트레이너가 없어 몸 상태를 점검하거나 가벼운 부상을 치료하는 일은 각자 알아서 해결한다.

더 괴로운 건 연습 경기를 위해 이동하는 일. 미라클야구단이 사용하는 경기도 연천의 베이스볼파크는 외진 곳이라 상대 팀들이 오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전용버스가 없어 승합차를 빌리고 개인 차량을 이용해 송추, 강화, 서산 등지의 상대팀 구장으로 갔다.

이 때문에 지방으로 1박 2일 원정을 가는 경우는 첫 날 성적이 좋지 못했다.

다행히 주행거리 16만 킬로미터를 넘은 25인승 중고버스 한 대를 1,400만 원에 구입해 지난 주부터 쓰고 있지만 선수단과 코칭스태프가 다 탈 수 없어서 여전히 렌탈한 승합차 한 대가 따라 붙는다.




연습경기가 열리는 날은 대개 김밥이나 햄버거 등으로 점심을 간단히 때우고 경기를 뛴다.



그래도 미라클 선수들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 구단은 연습경기 일정을 꾸준히 잡는다. 마치 무림을 떠돌며 고수들에게 대련을 요청하는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 처럼.

지금까지의 전적은 16전 5승 10패 1무. 아무래도 선수가 충분치 않다보니 성적은 그리 좋지 못하다. 그러나 10패 중엔 한 두 점차의 '석패'가 7 경기나 돼 미라클 팀의 끈질긴 팀 컬러를 보여 준다.

구단주 박정근 호서대 교수(왼쪽)와 김상걸 선수
'프로에 진출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야구를 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싶어’ 창단하게 됐다는 구단주 박정근 호서대 교수(60세, 체육 전공)는 미라클 팀의 전력이 “프로 2.5군 정도”라고 말한다.

희망은 보인다.

지난 6월말엔 구단의 투수였던 김상걸 선수(사진)가 NC다이노스의 테스트 프로그램으로 스카우트됐다. NC측은 김 선수를 두 달간 지켜본 뒤 정식 입단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1일 낮 고려대 송추 야구장에서 벌어진 연습 경기 후 우경하 고려대 감독은 미라클 선수단에 대해 “야구에 대해 절실한 모습들이 보여 대학 선수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며 “프로팀으로 가는 선수들이 나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16일 연습경기를 가진 SK와이번스 2군의 김대진 코치도 연습을 통해 “좀 더 다듬으면 프로무대에서 가능성이 있을 선수들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연천 미라클 선수들은 눈빛이 살아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이를 악문다. 당연히 열악한 환경에 대해서도 의연하다.

연천 미라클 야구단 선수들의 희망은 프로 야구팀 입단. 하지만 굳이 프로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야구만 계속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선수들도 있다.

선수단은 겨울철에는 훈련할 수가 없어 10월까지 합숙한다. 그리고 프로팀의 테스트에 집중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집계를 보면 올해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10개 프로팀에 입단한 선수는 모두 155명. 1,2군으로 입단한 선수가 고졸 40명, 대졸 22명이고 육성 선수(3군)로 입단한 선수가 고졸 43명, 대졸 50명이었다.

그러나 대한야구협회 집계에 의하면 올해 고교와 대학 졸업 선수는 모두 721명이다. 이 가운데 21%가 프로에 간 셈이지만 이 비율은 육성 선수를 제외하면 8.5%에 그친다.

해마다 고교와 대학에선 선수들이 700~800명 가량 졸업하기 때문에 연천 미라클 선수들에게는 프로 진출의 관문이 갈수록 좁아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훈련은 천재를 만들고, 신념은 기적을 이룬다”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을 미라클 선수들은 믿는다.

※ 이 기사는 연천 미라클야구단을 후원하기 위해 <다음 뉴스 펀딩>에 제공됐습니다.

▶기사 바로가기 뽈하고 방매이만 좀 도와조도….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