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합의한 조사 방식은 다음달 14일까지 정보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국방위, 안전행정위 등 국회 관련 상임위를 열어 자료 제출과 현안보고를 받는 것.
국회 정보위 차원의 비공개라도 괜찮다며 청문회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야당이 전날 고위 당정청 만찬 회의 이후 ‘청문회 절대 불가’로 돌아선 여당의 고집에 막혀 결국 청문회를 포기한 것이다.
실무 협상을 벌였던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합의문 발표 직후 브리핑에서 “청문회 제도는 명백히 법에 정한 절차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의혹이 큰 국정원 해킹 사건에 대해 국회에서 청문회조차 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국가 안보와 직결된 부분이 많아서 정보위가 생기고 청문회를 개최한 적이 없다”면서 “청문회에 준하는 절차에 따라서 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누리당도 진실을 규명하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특히 정보위 소속 의원들이 자료 제출부터 자료 검증, 현장 검증 등 철저하게 진실을 규명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이 자료제출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기자들의 우려에 대해 “국정원은 소극적이지 않다. 자료제출에 상당히 적극적”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과연 국정원은 조 원내수석의 예상대로 정보위원들이 요구하는 자료를 성실히 제출할까? 과거 국정원 댓글 사건 등의 경우에 비쳐보면 기대치는 그리 높이 올라가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국정원 측이 자료제출을 거부하더라도 야당 정보위원들은 눈에 불을 켜고 호통을 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법적 제재 장치는 전무하다. 국정원의 자료 제출 거부가 법적으로 보장된 행위이기 때문이다.
야당의 동의로 '청문회'라는 이름표가 떼어진 순간부터 국회의 진상조사 방식은 인사청문회법이 아닌 국가정보원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정보위 차원이라도 청문회가 열린다면 이는 인사청문회법에 준하는 절차로 진행된다.
인사청문회법 제12조는 ‘위원회는 그 의결 또는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로 자료의 제출을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 기타 기관에 대해 요구할 수 있으며 대상자는 기간을 따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5일 이내에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외로 출국한 나나테크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출석을 강제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보위 등 국회 상임위 현안보고는 국가정보원법이 적용된다.
국회에서의 증언 등과 관련한 국정원법 제13조 1항은 '국정)원장은 국가의 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 기밀 사항에 대하여는 그 사유를 밝히고 자료의 제출 또는 답변을 거부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특히 2항에서는 '제1항에도 불구하고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자료의 제출, 증언 또는 답변을 요구받은 경우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자료의 제출 또는 증언을 요구받은 경우에는 군사·외교·대북관계의 국가 기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발표로 인하여 국가 안위(安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하여는 그 사유를 밝히고 자료의 제출, 증언 또는 답변을 거부할 수 있다'고 안전막을 다시 한번 치고 있다.
결국 국정원 측이 의원들의 자료 제출 요구에 국가 안보와 관련됐다는 이유를 대며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 제출을 거부해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야당 측은 "여당이 청문회의 '청'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면서 다시 한번 박근혜 대통령에게 철저한 검찰 수사를 지시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