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로몬] 국가정보원이 '국가정치원' 인가요?

쓸로몬은 쓸모있는 것만을 '즐겨찾기' 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신조어' 입니다. 풍부한 맥락과 깊이있는 뉴스를 공유할게요. '쓸모 없는 뉴스'는 가라! [편집자 주]


어쩌다 국정원이 이 지경까지 됐나요? 7월 19일 밤에 나온 '국정원 직원 일동'의 성명은 추락하고 있는 국정원의 현재 위상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듯 합니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어느나라의 정보기관 일동이 "정치 공세가 '직원의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만방에 공표를 하나요?

국정원 대선 개선 의혹 사건, 서울시 간첩 조작 사건, 남북정상회의록 공개 등 최근 일련의 사건을 보면 국가정보원이 국가정치원으로 행세하면서 '정치 공세'를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병호 정원장은 연일 "정치공세를 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누가봐도 이상해서 하는 '의혹 제기'까지 굳이 막으려는 이유는 뭘까요?

국정원이 7월 17일, 이례적으로 낸 '보도자료 내용'(해킹 프로그램 사용 기록을 국회 정보위에 공개하겠다)으로 끝냈어야 했는데 너무 나갔다는 느낌입니다. 국정원의 대응은 말 그대로 '과유불급(過猶不及)'입니다.

지난 보름동안 해킹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이 벌였던 '여론 호도전'을 정리하는 이유는 이런 방식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국정원의 과민한 대응 방식

◇ 7월 5일 ~ 8일
이탈리아 '해킹팀'의 내부자료가 해킹으로 유출됐습니다. 유출된 자료에는 고객명단이 들어있었고 '5163부대'라는 고객이 국정원의 대외명칭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며칠 전인 6월 30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후 처음으로 국정원을 비공개로 '격려 방문'까지 했는데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 7월 9일 ~ 12일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를 비롯한 국내 언론들이 국정원의 '해킹 의혹'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국정원은 '노코멘트'로 일관했습니다.

◇ 7월 13일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에 '카카오톡 해킹 기술' 등을 문의하는 문건이 인터넷에 유출됐습니다. 비공식적으로 "해킹 프로그램은 대북용"이라고 했던 국정원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 7월 14일
국정원은 그동안의 비공식 입장 표명에서 벗어나 보다 공세적으로 나섭니다. 국정원은 "대북, 국외용으로 20회선만 구입했고 국민사찰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날은 숨진 직원 임모 씨에 대한 강도높은 감찰이 이뤄진 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2012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추가로 회선을 구입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정원의 첫 공식 입장도 의혹만 키운 셈이 됐습니다.

◇ 7월 15일 ~ 17일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안철수 의원을 진상조사위원장에 앉히고, 해킹 시연과 함께 해킹프로그램(RCS : 리모트컨트롤시스템) 사용내역을 제출하라고 국정원을 압박했습니다. 이에 국정원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RCS 사용기록을 국회 정보위에 공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7월 18일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담당 직원 임모 씨(45)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서에는 "민간인 사찰은 없었다"고 적혀있었습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국정원의 '2차 감찰'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 7월 19일
국정원은 저녁 8시 반쯤 '국정원 직원 일동'의 성명을 통해 "자국의 정보기관을 나쁜 기관으로 매도하기 위해 매일 근거없는 의혹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국정원은 "숨진 직원이 삭제한 기록은 100% 살릴 수 있고 이달중으로 복구해 국회 정보위에 공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 7월 20일
이병호 국정원장 주최로 해킹 의혹 대응 관련 회의를 열었습니다.


지난 3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국정원의 정치 개입은 국정원을 망치는 길"이라는 발언을 했던 이병호 국정원장 (사진=윤창원 기자)
국정원이 이번 사건에 유독 과민 대응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세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올해 3월 취임때부터 이 원장은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공언해 왔습니다. 이번 사건이 본인의 말을 뒤엎는 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건가요.

이것도 아니라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이번 해킹 사건도 지난 대선과 맞물려 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프로그램 구매 시점이 2012년 총선, 대선과 교묘히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또다시 국정원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강력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국민의 60%가 이번 해킹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의 해명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아무런 입장 표명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국정원의 주장대로 이번 사건이 핵심이 '대북, 국외용'이기 때문에 국정원이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과 국회를 협박하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다시 공은 국정원에게 넘어갔습니다. 공언한대로 각종 의혹 제기에 대해 담담하게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제시하며 설득과 이해를 구해야할 것 입니다.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을 단칼에 끊고 '국민정보원'으로 거듭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려봤자 '바보' 소리 이상 듣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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