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과 냉정 사이’ 구속집행정지, 김우중에서 이재현까지

재벌들 처벌 회피수단으로 악용되는 일 없어야

이재현 CJ회장
◇ CJ 이재현 회장 4차례나 형집행정지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21일자로 만료되는 CJ그룹 이재현(55)회장의 구속집행정지 기간을 오는 11월21일까지 4개월 연장했다.

이재현 회장은 2013년 7월 횡령과 배임, 탈세 혐의로 구속기소됐지만 건강문제로 옥살이를 할 상태가 못돼 2심에서 실형을 받고도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상태다.

이번에 구속집행정지가 또 연장됨으로써 2년째 형이 집행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동안 여러 재벌총수가 구속된 뒤 집행정지를 요청한 경우가 많지만 특정인에게 이렇게 길게 허용된 적은 없다.

사실, 이재현 회장의 건강상태는 매우 위중해 옥살이할 형편이 못된다. 만성신부전증이 있는 이 회장은 아내의 신장을 이식받았지만 거부반응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겪고 있다.

문제는 형평성이다. 일반인 사범의 경우에도 구속집행정지가 있지만 중대한 질병이나 가족의 임신, 사망 등의 경우가 아니면 주어지지 않고 특정인에게 반복적으로 허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재현 회장의 경우, 지난해 9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받은 이후 세 차례나 구속집행정지를 받았고 이번까지 4차례나 구속집행정지를 받는 셈이다.

특히, 구속집행정지가 재벌총수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면서 서민들에게는 유전무형(刑) 무전유형(刑)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온정과 냉정 사이를 오가는 법감정

태광그룹 자료사진
법에도 온정이 필요할 때가 있다. 법원이 피고인의 사정을 감안해 인간적 판결을 내리는 경우다. 법을 냉정하게 적용하는 것만이 최선의 판결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선애 태광그룹 상무는 징역 4년을 선고받기 이전부터 뇌경색으로 인해 고도의 치매를 앓아왔지만 형집행정지 연장을 받지 못했다. 구순을 앞둔 이선애 상무는 재수감된 뒤 옥살이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지난 5월 옥중사망했다.


법원을 향해 인도주의 정신을 저버렸다는 손가락질이 쏟아졌고 사법살인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법원이 이런 사정을 감안해 CJ 이재현 회장의 구속집행정지 연장 신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고(故) 이선애 상무의 아들인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역시 1천4백억원대의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됐지만 간암이 위중해지면서 구속집행정지를 여러차례 연장한 끝에 2심에서 보석을 받고 풀려났다. 구속집행정지라는 조항 자체가 온정이라는 체온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온정과 냉정 사이를 오가는 구속집행정지가 재벌들과 권력있는 사람들의 형벌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방위사업 비리로 구속기소된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도 최근 '식도이완불능증'을 이유로 법원에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2012년 수천억원대의 배임 혐의로 기소돼 구속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우울증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를 여러차례 연장해오다 결국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김승연 회장은 회사경영에 공식적인 관여를 못하고 있지만 최근 여의도 63빌딩에 면세점을 따내는 업무를 진두지휘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8.15 사면 때는 경제인 명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경제에 큰 위기를 가져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재산해외도피 혐의로 구속됐지만 고령과 심장병 등을 이유로 수차례 구속집행정지를 받았다.

그는 지금도 버젓이 국내외를 오가며 재기를 꿈꾸고 있다. 추징금 17조원을 아직 내지않았음은 물론이다. 추징금 미납 1위의 꼬리표를 달고도 대학특강까지 다닌다.

그의 과거 추종자들은 현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도 지내고 여당의 중진의원으로 당 요직을 맡기도 했다.

구속집행정지가 온정과 냉정 사이에서 정확히 길을 잡아야 사법적 신뢰 또한 길을 잃지않을 것이다.

그 나침반은 형평성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공평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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