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들의 자살 사건은 드물지 않게 발생했다. 국정원은 '치부'가 드러날때마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의 사례는 이를 증명한다.
지난해 3월 서울시 공무원 간첩증거조작 사건에 연루된 권 모 과장도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국정원으로부터 하청을 받고 증거조작에 관여한 조력자(협력자)가 자살을 시도하자 권 과장도 뒤를 따랐다. 그 이후 증거조작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대공 수사국장 등 상부의 책임은 면책됐다.
이런 연유로 국정원 직원들의 자살이나 자살시도가 안타깝게도 '꼬리자르기' '사건의 축소.은폐'라는 불신을 키워왔다.
◇간첩사건 조작 때는 자살 기도 후 '기억이 안나'
지난해 3월 22일 낮 1시 33분쯤 경기도 하남시 하남대로(옛 신장동) 모 중학교 앞에 주차된 싼타페 승용차 안에서 국정원 소속 주선양 부총영사 권모(52) 과장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권 과장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피고인 유우성(35)씨의 간첩 혐의를 뒷받침하는 위조문서를 입수하는 과정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중이었다.
탈북자 출신인 유씨가 서울시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간첩활동을 했다는 소식은 정권 차원에서 전국민적 안보의식을 고취하는 데 대대적으로 활용됐는데, 이후 결정적 증거가 위조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정원은 위기에 몰렸다.
당시 국정원은 유씨가 북한에서 활동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허룽시공안국 명의의 유씨 출입국 기록', '출입국 기록이 진짜라는 허룽시공안국의 사실확인서', '싼허변방검문소의 상황설명 답변서' 등을 검찰에 제출했다.
하지만 중국 대사관이 3가지 문건 모두 위조라고 밝히면서 국정원은 궁지에 몰렸고 위조증거 확보에 가담했던 권 과장은 "검찰이 수사를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며 자살을 기도했다.
이후 국정원은 "권 과장이 의식을 회복했지만 기억 상실 증세를 보인다"고 밝혔고,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국장과 차장, 국정원장 개입 부분까지 나아가지 못한 채 실무자들만 처벌하면서 종결됐다.
◇조직의 위기 때마다 할복·자살…전례 벗어날 수 있나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수사가 더 진전되지 못한 사례는 또 있다.
김영삼 정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장(국정원 전신)을 지낸 권영해씨는 1997년 대선 국면에서 김대중 후보 당선을 저지하기 위한 일명 '북풍 공작'을 주도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1998년 3월 서울지검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를 받던 권씨는 성경책에 숨겼던 칼날로 할복자살을 기도해, 검찰 수사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2005년 '삼성X파일' 사건이 폭로되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안기부 비밀 도청 담당인 '미림팀'.
당시 미림팀장이었던 공운영씨도 같은 해 7월 검찰 수사를 받던 도중 자신의 아파트에서 흉기로 복부를 찔러 자살을 기도했다.
공씨는 딸을 통해 "나라의 안정을 위해 비밀을 주검까지 갖고 가겠다"고 밝혔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 2차장을 지낸 이수일 전 호남대 총장도 '국정원 불법 도청'사건과 관련해 3차례 검찰 수사를 받은 후 자택에서 목을 매 숨졌다.
결국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국정원은 자신들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거나 정치적 위기에 몰릴 때마다 최고 수뇌부부터 차장, 과장급 직원이 결백과 안보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살을 시도했다.
그 때마다 수사가 중단되거나 진상은 묻혀 버렸다. 국정원 해킹프로그램 구매 사건도 수사 착수가 이뤄지기도 전에 '핵심 직원의 자살'이라는 돌발적 변수를 맞았다. 이번 사건만은 전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